노무현 대통령은 논쟁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 같다. 국회 개원연설을 통해 우리 경제가 위기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을 본격적으로 불러일으켰기에 하는 말이다. 위기일 때 위기가 아니라고 하는 것과 위기가 아닐 때 위기라고 하는 것 중에서 무엇이 더 위험한가? 물론 대통령은 후자가 더 위험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위기논쟁은 그동안 대통령이 유도했던 논쟁들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위기로 진단하든 안하든 이미 내적 외적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대내문제는 모든 경제주체들의 경제의욕이 떨어질 데로 떨어졌다는데 있다.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가 급증하면서 가계의 소비의욕이 떨어졌고, 반기업 정서와 대립하는 노사관계로 기업의 투자의욕이 떨어졌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걱정하는 대내 문제인 것이다. 우리 경제는 2004년 1·4분기 5.3% 성장했다. 그런데 수출의 성장기여율은 105%로 지난 4분기 연속 100%를 상회하고 있는 반면 내수의 성장기여율은 오히려 4분기 연속 마이너스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가 향유해 왔던 수출호조―투자 및 고용확대―소비증가라는 '선순환의 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국내 기업이든 외국 기업이든 대한민국이 더 이상 매력적인 투자대상이 아니라는 것도 또 다른 대내 문제이다. 우리 기업은 해외로 살길을 찾아 나서고 있고, 우리가 그토록 유치하려 노력하는 외국인투자는 한국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2003년 한해 신고기준으로 65억 달러 정도로 전년대비 30% 가까이 감소했다. 1999년과 비교하면 4년 만에 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한편 대외 문제는 우리가 수출을 크게 의존하고 있는 중국과 미국 경제가 조만간 경기조절에 들어갈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금리인상을 앞두고 있으며, 중국은 연착륙을 위하여 긴축정책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출의 호조세는 더 이상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주던 수출조차 힘겨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대목이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과 유가의 인상이 더해지면 상황은 더욱 더 어려워진다.
이제 위험한 위기논쟁은 그만하자. 적어도 대통령이나 정부는 이 논쟁에서 빠져야 한다. 대신, 위기이냐 아니냐의 분석은 학계에 맡기자. 그리고 대통령이 과장된 위기론으로 경제가 어려워진 예로 들었던 1989년과 2000년의 상황에 대한 인과관계 분석도 학계의 몫으로 남기자. 그 동안 두 해 모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 총선으로 야기된 정치적 왜곡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즉, 2000년 당시 정부가 나서서 '벤처붐'과 '카드붐'을 통한 경기진작책을 내놓은 것은 위기론에 못 이겨서가 아니라 총선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400만 명에 달하는 신용불량자 문제로 지금 우리 국민들이 그리고 우리 경제가 이토록 고통 받게 된 원인을 제대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정조사를 통해서라도 말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우선적으로 할 일은 위기논쟁을 접고 우리 기업과 외국기업을 안심시켜서 돌아오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과장된 위기론을 통해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이끌어 낼 수 있던 시절이 아니다. 개혁을 두려워하는 세력의 중심에 대기업이 있고 이들이 의도적으로 경제위기설을 퍼뜨리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 기업이 두려워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불확실성이다. 내적으로는 정책의 일관성 결여가 그리고 외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경기조절이 두려운 것이다.
올 1월 경제학자들이 모여 '이제는 경제'라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당시 17대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경제가 정치에 희생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일념에서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국민들은 우리 대통령이 위기논쟁을 유도하기 보다는 경제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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