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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 인터뷰/하워드 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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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 인터뷰/하워드 진 교수

입력
2004.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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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중사'로 유명한 하워드 진(Howard Zinn·82) 보스턴대 명예 교수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전후 정책에 대해 거친 비판을 쏟아냈다. 미국이 이라크 국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조속한 철군뿐이라고 그는 거침없이 주장했다. 미국의 대표적 실천 지성으로 꼽히는 진 교수에게서 이라크 문제를 비롯한 국제 정세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보스턴 근교 휴양지에 머물고 있는 그와 이메일로 이뤄졌다.

―미국은 이라크전을 단기간에 승리로 이끈 뒤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이라크는 해방된 것인가.

"현재와 같은 혼란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라크인들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말한 대로 한 무리의 암살단원이나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데 있다.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은 미군을 점령군으로 여기고 있으며 제국주의자들이 그들의 일상에 침투했다고 믿고 있다. 피점령자들이 늘 그랬듯 그들은 폭력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들은 사담 후세인의 독재로부터 해방됐지만 다시 미국의 억압 아래 있다고 느낀다."

―부시 대통령은 6월30일 이라크에 주권을 이양하고 이라크 땅에 민주주의를 정착할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지 않는가.

"진정한 권력의 이전은 없을 것이다. 6월30일 권력이양은 서류상의 이전이다. 미군의 주둔에 실상이 숨겨져 있다. 석유는 이라크인들이 아니라 미국에 의해 통제되고 이라크인들이 내린 어떤 결정도 미국 점령자들에 의해 다시 검토될 것이다."

―주권이양이 출구전략(Exit Strategy)이 아니라 이라크 영구장악을 위한 미국의 전략이란 말인가.

"출구전략이란 없다. 이라크 땅에 남아 군사기지를 유지하고 석유를 장악하려는 잔류 전략이 있을 뿐이다. 재앙 속으로 더 많은 군대를 보내는 것은 베트남 전쟁의 재판이 될 것이다. 그 전쟁에서 미국은 베트남 국민들을 굴복시키는 데 실패했고 점점 더 많은 군대를 보냈지만 승리하지 못했다. 양측의 죽음만 있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

"미국이 이라크를 위해 해야 할 최선책은 즉각 철수이다. 대신 미국은 식량과 의료품, 기계장비 등 이라크 재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보낼 수 있다."

―미국이 지금 철군한다면 이라크 땅에는 더욱 혼란이 초래되는 것은 아닌가.

"미국이 물러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이라크 땅에 미군이 남게 될 경우의 결과는 너무도 자명하다. 미국이 남는다면 이라크 땅에 민주주의란 없을 것이다. 미국이 떠난다면 이라크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서로 평화롭게 사는 방법을 찾아 낼 수 있다."

―11월 미 대선에서 부시와 경쟁할 민주당의 존 케리 상원의원도 이라크 땅을 진공상태로 남겨두어서는 안된다고 하는데.

"이라크에 남고, 더 많은 외국 군대를 보내겠다는 케리의 구상은 이라크 국민들이나 그의 선거를 위해서나 재앙적인 것이다. 케리는 미국의 여론을 잘못 이끌고 있다. 연일 여론이 전쟁을 반대하는 쪽으로 바뀌는데도 말이다. 그는 몇 달 전 여론조사 결과에 근거해 부시의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이 왜 이라크에 집착한다고 보는가.

"신보수주의자들은 중동과 전세계에 미국의 힘을 확대하기 위해 이라크 전쟁을 기획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전쟁 상황에서는 전시 대통령이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경제적인 이유 즉 석유와 제국주의적인 이유인 해외 군사기지 확보 그리고 정치적 이유로 전쟁에 매달리고 있다. 나는 그들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머지 세계가 이 전쟁을 반대하고, 처음에는 속아 이 전쟁을 찬성한 미국인들조차도 이젠 반대로 돌아서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은 부시 정부의 구호가 됐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세계는 더 안전해지고 있는가.

"테러와의 전쟁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이념을 상대로 전쟁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처럼 군사적 행동의 유일한 결과는 미국에 대한 더 많은 분노와 더 격한 테러리즘이다."

―세계화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우리는 세계 부의 재분배를 필요로 한다. 세계 인구의 4%에 불과한 미국이 전체 부의 25%를 소비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 대선을 전망한다면.

"이라크 전쟁은 대선의 최우선 쟁점이다. 부시가 그 전쟁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나는 부시가 케리 때문이 아니라 자신 때문에 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본다."

―전세계적으로 반미주의 물결이 거세다. 이전부터 미국에 적대적이었던 일부 아랍권뿐 아니라 미국과 정신적 뿌리를 함께 하는 유럽, 심지어 한국과 같은 동맹국에서도 반미를 외치는 목소리가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증오의 뿌리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데 있다. 이런 증오를 끝내기 위해 미국은 평화로운 국가가 돼야 한다. 100여 개의 국가들로부터 군대를 철수해야 한다. 미국은 전세계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중단하는 대신 식량과 의약품, 보건으로 자국민들과 다른 나라 국민들을 돕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부시 정부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이전의 미국 정부들은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려고 했다. 부시 정부는 그런 위장막을 치우고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하는 일을 100% 지지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모두에게 재앙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중동 사람들은 미국을 증오할 더 많은 이유를 갖게 됐다. 그것은 미국인들을 위해서도 재앙이다."

―2차례의 6자회담이 있었지만 북한 핵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부시 정부의 대 북한 핵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북한이 경제적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핵 위협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경제적 지원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중국이 지역을 넘어 세계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군사적 측면에서 중국의 강대국화는 그렇게 큰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미국도 중국도 서로를 위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성장이다. 그것이 세계에 보다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9·11 이후 미국 사회가 보수화 경향을 보이면서 이념적 노선으로서 좌파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 제3의 길에 대한 평가와 함께 좌파 이념이 여전히 대중운동의 근거가 돼야 한다고 믿는가.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그룹이 자신들의 상황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념을 제시할 수 있느냐에 따라 한쪽 길이나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나는 좌파 운동이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중립지대의 많은 사람들을 '좌파들'쪽으로, 제3의 힘 쪽으로 끌어 당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나 인종평등, 경제적 정의 등 보편적인 원칙들을 향한 광범위한 연합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당신에게는 미국 혐오론자라는 비판이 따르는데.

"정부가 젊은이들을 전장에 보낼 때, 보통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것을 상류 부자들에게 줄 때 나는 그 정부를 혐오한다. 정부에 반대하는 것은 미국에 반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부란 삶의 평등과 자유, 행복추구권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만든 창조물이다. 독립선언서에 나오듯이 정부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그 정부를 '바꾸고 없애는' 것은 사람들의 권리이다.

―한국에서는 촛불시위가 정치적 의사를 집단적으로 표출하는 주요 형태가 되고 있다. 그런 집단 행동이 사회변혁의 동력이 될 수 있는가.

"촛불집회 같은 행동은 그 자체로 변혁을 이끌어 낼 만큼 강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더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저항운동의 일부가 될 때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그런 행동이 포퓰리즘이라고 비난 받아서는 안된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하워드 진은 누구

하워드 진(82)은 보수적인 미국 인문학의 풍토 속에서 노엄 촘스키,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함께 좌파 역사학을 대표하는 지성이다. 그는 1980년 내놓은 '미국 민중사'에서 콜럼버스와 제퍼슨, 잭슨, 링컨, 루스벨트 등 미 대통령들을 인종차별주의자, 인디언 학살자, 전쟁광, 악한으로 묘사했다. 책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그는 반미주의자로 낙인 찍혔다.

뉴욕의 유대인 빈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노동자로 전전하다 2차 대전에 조종사로 참전했다. 27살 때 콜럼비아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그는 전 후 애틀랜타의 '흑인 전용' 스펠만 대학과 보스턴대학 교수를 지냈다. 1960∼70년대의 베트남전 반대 물결 속에서 그는 시민불복종 운동을 이끌었고 체포와 투옥을 마다하지 않았다.

진은 요즘도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거나 진보잡지 프로그레시브 기고를 통해 반전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불복종과 시민운동''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등 저서는 평생을 반골로 살아온 그의 사상 궤적을 보여준다.

/김승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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