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시대의 기술혁신은 기계화 자동화로 대표되는 것이었다. 기술이 사람의 생활에 가져다 주는 편의와 변화를 새삼 말할 필요는 없지만 정보화로 표현되는 요즘의 변화는 그 폭과 속도가 기계화나 자동화 시대의 경험과는 비교가 안 된다. 정보화는 디지털화이고, 상상을 넘는 복합과 통합을 진행시킨다. 웬만큼 정신을 차리고 따라가지 않으면 어지러움증을 일으킨다. 정보화의 개방과 통합은 개인 영역의 신장, 자유의 확대를 준다. 그러나 첨단 정보화는 거꾸로 개인에 대한 간섭 감시, 또 폐쇄성을 강화시키는 역설도 낳는다. 그리고 이는 불안 공포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미국에서 전국민 신분증제를 도입하자는 논란이 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중적 시대상의 한 단면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는 일방주의 미국의 강박관념과 고민이 이 논란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9·11사태 이후 미국 제1의 적은 테러이다. 그림자 같이 다가와 선제공격을 가하는 테러라는 적에 대처하려면 그 전장은 전 세계가 되다시피 한다. 그러다 보니 생기는 안보강박증이 전국민에게 신분증을 발급하자는 제안으로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주민등록증 같이 국가가 발급하는 일원화한 신분증으로 안보통제와 보안검색 체제를 완벽하게 구축하자는 것인데,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기치로 건다는 미국으로서는 파격적이다.
■ 미국에서 흔히 신분확인 수단으로 운전면허증이 통용되지만 이는 각 주가 발행하며 요건도 저마다 다르다. 또 운전면허증은 운전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자격을 증명하는 것일 뿐 지금 미국이 필요로 하는 안보 차원의 용도나 기능과는 거리가 있다. 며칠 전 뉴욕타임스의 사설은 국민신분증제가 갖는 '전체주의'적 문제를 심각히 고민하면서도 보완대책을 전제로 도입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중앙의 획일적 통제라면 알레르기를 일으키다시피하는 미국인들이지만 그 미국이 이렇게 변했음을 알 수 있는 글이었다.
■ 신분증제의 가장 큰 문제는 위조가능성이다. 기술과 기술의 대결에선 어떤 위조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신분증에 집약되는 개인정보의 철저한 관리 역시 선결과제다. 안보통제와 인권, 테크놀로지라는 세 측면이 뒤엉킨 이 문제는 미국만이 겪는 일은 아니다. 지하철 공사의 공익요원에게 근무감시를 위한 전자칩을 패용토록 해 물의를 빚었던 얼마 전 우리의 경험도 별로 다른 범주가 아니다. 다만 뉴욕타임스는 국민신분증제를 채택하더라도 개개인의 선택에 맡길 것이며, 여기에 동조하지 않는 국민이라도 인권적 불이익이 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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