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조세의 소득 재분배 기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빈곤 구조의 고착화로 우리나라 국민 중 약 400만명은 당대는 물론 다음 세대에도 빈곤 탈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빈곤의 덫'에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8일 내놓은 '취약계층 보호정책의 방향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로 소득 불균형이 급속히 악화, 1996년 0.298이던 지니계수(가처분 소득 기준)가 2000년에는 0.358로 올라갔다. 이에 따라 미국(0.368)과 멕시코(0.494)에 이어 OECD국가 중 3번째로 소득불균형이 심한 나라가 됐다. 지니계수는 소득불균형을 측정하는 지표로,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한 것을 뜻한다.
소득 불균형의 원인은 부자에게서 세금을 거둬 가난한 자에게 분배하는 조세의 소득 재분배 기능이 취약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세금·연금 등을 통해 소득이 재분배되기 전과 그 이후의 지니계수를 비교한 결과, 한국은 세전(稅前) 0.374였던 지니계수가 세후(稅後)에는 0.358로 4.5% 감소하는 데 그쳤다.
반면 스웨덴(0.439→0.218·101.4% 감소), 독일(0.395→0.249·58.6% 감소) 등 나머지 OECD 회원국 조세체계의 소득 재분배 기능(평균 41.6%)은 한국보다 8배 가량 높았다. 유경준 연구위원은 "자영업자의 소득파악 정도가 외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00년 현재 전 국민의 8.4%인 399만명이 빈곤계층(항상소득기준)으로 전락했으며, 이들 중 93% 이상이 당대(當代)는 물론 자녀 세대에서도 빈곤에서 탈출할 수 없는 '빈곤의 덫'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KDI는 저학력과 가장의 실직 등으로 빈곤가구는 소득 창출력이 극히 낮으며, 이에 따라 '차상위 빈곤계층'을 넘어 빈곤에서 탈출할 가능성은 6.2%에 불과하다고 추정했다.
또 자녀 세대에서의 빈곤 탈출 가능성을 가늠할 대표적 지표인 자녀 교육비 역시 빈곤층의 지출규모가 고소득층의 7분의1에 불과, 가난이 대물림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KDI는 "의료급여 수급자를 빈곤층과 차상위 계층으로 확대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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