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남북 통일축구가 열린 1990년 10월 24일 아침 한국일보 사회면에는'北기자 4명 한밤 본사 기자집 방문 1시간'이라는 제목의 특종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다. "통일도 이렇게 쉽게 이뤄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는 북한 기자의 말로 시작하는 이 기사는 당시 사회부 신윤석 기자가 취재 중에 "평범한 남한 가정집을 방문해 보고 싶다"는 북한 기자들을 '남북 당국의 사전 합의 없이' 자기 집으로 초청, 서울의 4박 5일과 통일에 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눈 내용이다. 북한 기자들이 함께 사는 신 기자의 장모에게 큰 절을 하고 필기구 등을 서로 선물하는 등 '남북의 유쾌한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이삿짐용 곤돌라를 타고 올라와 창 밖에서 취재를 시도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이 '돌발 초청'은 분단 이후 북한 주민이 처음으로 남한의 가정집을 방문한 것으로 남북 교류사에 상당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이런 '돌발 초청' 특종과 통일축구의 열기를 타고 1992년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됐고 당시 신 기자 집을 찾았던 북한 중앙통신 기자는 최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6자회담 때 한국일보 기자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기자가 직접 발로 뛰며'뉴스'를 발굴해 특종을 만들고 남북화해의 물꼬도 튼 셈이다.
한국일보 50년에는 이런 '치열한' 기자정신이 배어있다. 1960∼7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 어둠 속에 묻힐 뻔한 소중한 문화재에 빛을 준 것도 한국일보였고 80년대 민주화의 거대한 격동과 90년대 다양한 사회 격변의 흐름을 정확히 짚은 것도 한국일보 지면이었다. 2000년대 들어 자칫 세간의 야사로만 묻힐 뻔한 온갖 '게이트'(권력형 비리)를 역사적 사실로 바꿔놓은 것도 바로 한국일보의 기자정신이었다. 때로는 암울했던 시대가 따뜻하고 훈훈한 한국일보의 특종을 만들어주기도 했고, 현장을 뒤지는 한국일보의 치열한 기자정신이 우리 현대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기도 했다. 아침마다 특종이 넘쳐 나는 한국일보의 지면은 50년 동안 하루하루 쌓여 독자들에게 역사책보다 더 실감나는 '살아있는 사료(史料)'를 만들어 냈다.
한국일보의 특종 50년은 문화가 강한 신문, 사건이 강한 신문, 추적·탐사·발굴 보도에 강한 신문으로의 발전을 그대로 보여준다. 66년 9월 8일자 한국일보에는 대구 주재 이갑문 기자가 특종 보도한 '국보 21호 석가탑 훼손, 도굴 가능성'이라는 기사가 사회면 톱을 장식했다. 조사결과 석가탑 파손은 결국 도굴범의 소행으로 밝혀졌고 이 기사는 한국기자협회가 67년 제정한 '한국기자상' 첫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제1회 한국기자상을 거머쥔 한국일보는 지난해 이태규 기자가 특종한 '양길승 청와대 부속실장 향응 파문'으로 제35회 한국기자상까지 받으면서 지금까지 절반에 가까운 17번을 휩쓴 기록을 세웠다.
1967년 창간 10주년 기념사업으로 신라 학술 조사사업을 실시했고 그 결과 그때까지만 해도 실재 여부가 알려지지 않았던 문무왕릉을 경북 월성군 봉길리 앞바다 대왕암에서 발견, '대왕암은 문무왕릉'이라는 제목으로 5월 16일자 1면 톱으로 보도했다. 이 발견은 지금도 해방 이후 최대의 문화사적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1973년 경주 천마총 신라 금관 발굴과 74년 광릉 크낙새 번식 확인 등도 한국일보가 그 첫 소식을 세상에 전했다.
80년대 들어 군사정권의 탄압이 시작됐지만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 했던 한국일보의 기자정신은 오롯이 살아있었다. 1986년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는 당시 '말'지 9월호에 '보도지침'을 폭로해 군사정권의 언론탄압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88년엔 군사정권시절 단행됐던 '언론건전육성종합방안'보고서를 단독 보도해 서울경제신문 강제 폐간 등 언론통폐합 전말을 세상에 알렸다.
독자들에게 한국일보는 사건에 강한 신문이었다. 1985년 3개 식품회사에 대한 '독극물 협박 사건'특종 보도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1986년 사회부 설희관 기자가 특종한'에이즈(AIDS) 양성 첫 내국인 격리'보도는 당시만해도 생소했던 에이즈에 대해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새마을 비리 수사 도중 전경환씨의 일본 도피성 출국(88년 한국기자상) 등 한국일보의 사건 특종이 이어지자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아예 야근 때면 한국일보 야근 기자의 차량 뒤를 졸졸 따라다닐 정도였다.
한국일보의 특종은 따뜻했다. 1997년 캄보디아'훈 할머니'특종 보도는 끈질긴 추적과 50년 망각과의 싸움 끝에 국내 가족 상봉으로 이어져 조국의 따뜻함을 세계에 알렸다. 당시 한국일보는 6월 13일 외신을 통해 훈 할머니의 존재를 처음 접한 뒤 특별 취재진 구성과 2단계에 걸친 끈질긴 취재, 유전자 감식을 통한 과학적인 방법을 총동원해 마침내 76일 만에 훈 할머니를 고국에 초청, 가족과의 상봉을 성사시켰다. 1999년 기획 취재를 통해 특종 보도한 '동강을 살리자' 시리즈(제31회 한국기자상)는 생태계의 보고인 영월 동강에 건설되려 했던 동강댐 건설을 백지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한국일보의 '녹색생명운동'과 더불어 한국 시민사회 환경운동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사건에 강한 한국일보의 기자정신은 2000년대 들어 권력과 돈이 결탁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탐사·발굴 특종으로 이어졌다. 특종의 내용도 단순 고발이나 폭로에서 한발 나아가 심층 추적 보도와 대안 제시로 바뀌었다. 2001년부터 줄줄이 터지기 시작한 진승현·이용호·최규선·윤창렬 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의 '판도라의 상자'를 처음 연 것은 바로 한국일보의 검찰·법조팀의 특종 보도였다. 지난해 'SK 분식회계 적발, 비자금조성'과 관련한 5건의 연속적인 특종 보도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돼 오직 독자만이 주인이라는 한국일보의 창간 정신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었다.
지난해 10월 한국일보의 '전두환 은닉 비자금 꼬리 잡혔다'는 특종 보도로 전재산이 30만원이라던 전 전대통령의 1,000억원대 비자금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 같은 한국일보의 잇따른 특종은 공직자와 기업인의 도덕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였다.
참여정부 들어서도 한국일보는 현정부 실세들의 비리를 폭로하는 특종을 잇따라 터뜨려 권력의 특권을 견제하고 검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를 선도하는 '탐사 추적보도'의 전형을 세워가고 있다. '양길승 청와대 부속실장 향응 비리' '썬앤문 게이트' '노무현 캠프 대선자금 제공 기업 명단 및 액수'등의 특종은 권력기관들의 흠집내기식 '음모론'속에서도 연속 보도를 통해 결국 진실을 밝혀내는 치열함을 보여주었다. 손명세 연세대 교수는 한국일보 지면평에서 "한국일보는 사건의 깨끗한 마무리를 통해 한 줄의 기사가 시대를 바꾸는 역사가 되는 '기사의 역사화(歷史化)'를 이루려는 노력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김호섭기자 dream@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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