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수가 흔하디 흔한 일본 나가사키(長崎)는 이국적인 풍광으로 가득하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두른 고풍스런 성당, 개항 시대의 서양식 주택가 등이 섬세하게 보존되어있다. 메이지 시대 외인촌에는 중세 유럽풍의 의복을 대여해 주는 가게가 있어, 일본 여인들이 드레스를 입고 서양식 정원을 산책하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또한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시마바라 운젠국립공원이나 사세보 도자기마을처럼 일본 전통의 풍물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지척이다. 일본과 서양의 공존, 나가사키현의 매력이다.
하우스텐보스-친환경적 네덜란드 테마파크
17세기식 유럽 고성을 가로질러 풍차가 보이는 선착장에서 지붕이 달린 아담한 보트를 타자마자 만발한 튤립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운하 위를 노니는 백조 무리와 동행하며 하늘을 찌를듯한 고딕 첨탑을 지나면 우아하게 솟아있는 호텔이 보인다. 정원 대신 운하를 품고 있는 호텔에 체크인을 하면 벨보이가 친절하게 가방을 들어준다. 중세 유럽의 거리에 와있는 것일까? 아니다. 여기는 일본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의 하우스텐보스.
네덜란드어로 '숲 속의 집'을 뜻하는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는 1992년 잠실 롯데 월드의 14배나 되는 49만평의 간척지 위에 세워졌다. 건설비만 4조원이 넘게 들었다. 쇄국의 시대에도 수교의 끈을 놓지 않았던 유일한 나라인 네덜란드와의 화친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40만 그루의 나무와 30만 송이의 꽃을 배경으로 항구, 범선, 궁전, 정원, 교회, 상점, 극장, 박물관, 우체국, 은행, 소방서 등이 갖춰진 하나의 완벽한 도시이다.
심볼타워인 돔 투른의 전망대에 오르면 하우스텐보스의 규모에 놀라고, 거리를 구석구석 둘러보면 건축물 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 등 세심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낸 일본인들의 솜씨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네덜란드왕국 베아트릭스 여왕의 궁전과 바로크식 정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팰리스 하우스텐보스에서는 거대한 돔 벽화와 중세 유럽의 고미술품들을 볼 수 있고, 유리박물관에는 네덜란드·러시아 등서 들여온 유리세공품이 전시되어 있다. 묵직한 샹들리에가 걸려있는 호젓한 성당에서는 실제로 결혼식이 열리기도 한다.
하우스텐보스는 단순한 테마파크를 뛰어넘어 친환경적 미래형 도시의 비전을 보여준다. 인공운하는 벽돌 포장수로, 제방쌓기 등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정비된다. 물도 세 번 정도 재활용한다. 거리에는 클래식 택시와 버스를 제외한 일반차량이 진입할 수 없다. 하우스텐보스는 깨끗한 자연 속의 작은 유럽이다.
나가사키-개항의 추억
카스텔라, 오페라 '나비부인', 원폭의 상처. 나가사키시를 유명하게 만든 것들이다.
1571년 일본 최초로 개항한 나가사키에는 서양의 총포와 카스텔라가 함께 들어왔다. 총으로 상징되는 선진문물을 들여와 일본을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성장하게 해주었던 서양은 일본인에게 카스텔라처럼 달콤한 존재였으리라. 그러나 개항은 마냥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서양인을 사랑하였지만 버림받았던 나비부인의 슬픔은 나가사키에 화인처럼 찍혀있다.
나가사키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미나미야마테 언덕 입구에 위치한 일본 최고의 고딕양식 건물인 오우라성당을 지나면 그라바엔(글로버 정원)이 나온다. 그라바엔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로 유명한 곳. 1만평에 달하는 이국적인 정원 사이사이 8개의 저택 중 가장 아름다운 그라바 저택에는 영국상인 토마스 글로버와 그의 일본인 아내의 자취가 남아있다. 나비 문양이 찍힌 기모노를 즐겨 입었던 글로버 부인은 오페라 나비부인의 실제모델로 알려져 있다. 군수업체 미쓰비시의 조선소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나비부인의 프리마돈나 미우라 다아키의 기념동상이 망부석처럼 바다 너머를 보고 있다. 그녀가 손끝 저 멀리 바라보는 것은 이국을 향한 슬픈 동경이 아니였을까.
나가사키 개항의 추억은 빛 바랜 유럽저택의 애조 띤 후일담으로 그치지 않는다. 개항이 가져온 총과 무력에 심취한 일본은 서양의 제국주의까지 알뜰히 배운 나머지 2차대전을 일으키고 만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시민들은 원폭이 떨어진 이 날을 결코 잊지 못한다. 원폭의 상처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평화공원과 원폭자료관은 나가사키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장소이다.
원폭낙하 중심지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서양식 성당 건물이 무참하게 파괴된 채 기둥만 남아있다. 원폭낙하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길의 한 구석.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외진 곳에 한국인 피폭 희생자의 위령비가 왜소한 모습으로 서 있다. 누군가가 놓아둔 초라한 국화꽃 한송이.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평화'에 무언의 항의를 하는 듯 하다.
/사세보·나가사키=김소연기자
aura@hk.co.kr
■기괴한 계곡 "운젠지옥"
나가사키의 화려한 이국색에 담담해질 즈음, 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일본 전통의 향취를 맛볼 수 있는 시마바라시로 향한다. 운젠산에 안겨있는 시마바라는 성을 중심으로 발달한 오래된 도시이다. 해자로 둘러싸인 시마바라성과 무사도의 숨결이 배어나는 무가저택. 사무라이 칼의 절도를 숭상하는 일본인들의 향수를 엿볼 수 있다.
화산과 온천의 나라 일본을 제대로 즐기려면 운젠국립공원이 제격이다. 1934년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유황 냄새가 감도는 일본 전통 온천여관이 줄지어 있다. 일본인들은 서양식 고급호텔보다 전통 온천여관(료칸)을 윗길로 치고, 실제로 료칸이 호텔보다 더 비싸다. 운젠공원 내의 큐슈료칸이 가장 유명하다. 이 곳의 객실 너머로 하얀 연기를 내뿜는 기괴한 계곡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운젠지옥(사진)이다.
천연 온천수가 끓어오르는 다양한 모습을 지옥에 비유한 운젠지옥은 이름 그대로 지옥같다. 실제로 운젠의 옛 주민들은 원한이 있는 사람을 이곳으로 유인한 다음 온천물에 빠뜨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한다. 박해당한 가톨릭 신자들이 처형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땅 속 귀신이 토해내는 회한의 한숨인가? 부글부글 끓는 유황냄새가 코를 찌르고 희뿌연 증기가 시야를 가린다. 40분 남짓 전 코스를 돌고 나면 머리카락이 증기로 폭 젖는다.
온천이 시마바라 자연의 축복이었다면 화산은 재앙이었다. 미즈나시 혼젠은 화산피해 마을을 복구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해 둔 곳이다. 지붕만 제외하고 땅 속에 생매장된 일본 전통가옥들이 당시의 공포를 증언한다. 이 유령마을 바로 옆에는 새로 개척된 마을이 보인다.
/시마바라=김소연기자
■나가사키 여행법
하우스텐보스- JR하카다역에서 직행 특급열차'하우스텐보스호'로 1시간 40분. 다케오 온천역에서 특급열차로 40분, 나가사키역에서 특급열차로 1시간, 사세보역에서 열차로 20분. 역에서는걸어서 5분. 나가사키 공항에서는 직행선박인 OCEAN LINE으로 50분. 하우스텐보스 패키지-배낭여행, 효도여행, 허니문 등 다양. 30만원대에서100만원대까지. 하우스텐보스 숙박시설-장내 3개의 특급호텔(1인1박 15,000∼ 35,000엔)에서는 한밤중의 하우스텐보스를 만끽할 수 있다.장외호텔은 좀 더 저렴하다. 나가사키시의 먹거리-카스텔라와 함께 맵지않은 나가사키 짬뽕, 접시우동이 유명하다. 문의 일본전문 (주)여행박사(www.tourbak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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