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화산섬이다. 지금부터 약 100만년전 쯤 화산활동을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던 시기인 50만년을 전후해 제주도 화산 역시 활발하게 분출했는데, 10만 년전 쯤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 후에도 화산활동은 간헐적으로 지속돼 수천년 전까지도 뜨거운 용암과 화산재와 같은 쇄설물들을 뿜어냈다.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용암이 흘렀던 모양, 부글부글 끓다가 굳어버린 모습 그대로의 현무암 덩어리들을 쉽게 볼 수 있다.화산섬에 사는 제주도민들은 아직도 풍화가 덜된 용암위에서 손바닥만한 땅을 일구고 살아왔다. 더구나 고지대의 경우 지력이 더욱 얕아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한 곳에서는 소나 말을 방목하면서, 일시적으로 화전을 일구거나, 노루나 꿩, 그리고 멧돼지를 사냥해 생계를 이어왔다.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곳,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 있는 숲이 군데군데 있다. 그 중에서도 널찍한 도로가 씽씽 달리고, 주위에는 현대식 차밭이 조성되어 있으며, 둥글둥글한 조각밭에는 푸른 감귤나무랑 목초, 두릅나무, 보리, 유채 같은 작물이 가득가득 담겨 있는 제주도 중산간의 모습 그대로인 곳이 있다. 남제주군 안덕면 서광리와 북제주군 한경면 명이동에 걸쳐 있는 숲이 바로 그 곳이다. 이곳 사람들은 명이동 곶자왈 혹은 서광 곶자왈이라고 하는 곳이다.
밖에서 보면 어딘지 허술해 보이는 숲이다. 멀리 한라산 정상이 보이고 태평양 바다도 보인다. 그러나 숲속에 들어서면 앞이 캄캄할 정도로 울창해 위압감마저 느끼게 된다. 주로 종가시나무라고 하는 상록수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이 나무는 원래 곧게 자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 곳에서는 여러 갈래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이 이 나무로 집을 짓고, 땔감으로 쓰고, 숯을 굽고, 농기구를 만들기 위해 베어 썼기 때문이다.
이 숲 속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여간해서 볼 수 없는 낯선 모습들이 있다. 그 하나는 우리 키 정도나 될 것 같은 돌무더기들이다. 흩어져 있는 돌들을 모아 놓은 것인데, 바로 이곳이 화전이었음을 말해주는 유산들이다. 다른 하나는 움막집터 같기도 하고 무슨 저장고였을 것 같기도 한 웅덩이나 인공 동굴 같은 숯 가마터다. 이들은 모두 이 지역 주민들의 과거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유물들이다.
이제 세월과 함께 숲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비록 바닥은 용암으로 되어 있어서 땅의 깊이는 한 뼘에 불과하지만 온난한 기후와 넉넉한 강우량 덕분에 이렇게 울창해진 것이다. 종가시나무만이 아니라 개가시나무도 간간이 보인다. 이 나무는 큰키나무로서는 유일하게 보호야생식물로 지정된 수종이다. 구실잣밤나무, 붉가시나무, 참식나무 같은 다양한 상록수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숲이다. 백서향, 춘란, 새우란, 약난초, 산딸기 같은 아름다운 야생화들도 더불어 피어나고 있다.
한때 생활터전이었던 곳, 땀이 배어 있는 곳, 한 때는 4·3사건이라는 참화도 거쳐 갔던 곳이지만, 지금은 그 파란만장했던 사연들을 품은 채 새로운 생태공간으로 바뀌어 풍요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그래서 더욱 정겨운 우리의 마을숲이다.
/김찬수 국립산림과학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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