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세상을 떠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기리는 찬사가 세계 언론에 넘쳐 나고 있다. 한 개인의 죽음을 두고 일부 아랍권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일고 있는 애도와 추모 열기는 근래에 없던 일이다.대통령 재임 시절 그와 경쟁 관계였던 인사들의 애도와 회고는 특히 인상적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극우파로 평가됐던 레이건 전 대통령은 우리를 향해 다가왔고, 이곳에 믿음을 남겼다"면서 그를 선견지명과 결단력을 갖춘 지도자였다고 평했다. 냉전 당시 동서 양 진영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은 이런 신뢰를 기초로 동서화해와 냉전 종식의 터를 닦았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레이건이 미국민에게 호소력 있는 매우 간결하고 명료한 메시지를 전했다면서 "그는 자신의 임기동안 붙여진 '위대한 의사 전달자'(Great Communicator)라는 별칭을 받을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레이건은 카터에게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드문 연임 실패라는 치욕을 안겨줬었다. 레이건은 대선 유세 때 임기 중 인플레이션과 실업을 해소하지 못한 카터를 이렇게 골 질렀다. "인플레이션이란 당신의 이웃이 일자리를 잃었을 때를 말하고, 불경기란 당신이 일자리를 잃었을 때다. 경기회복이란 지미 카터가 일자리를 잃을 때를 말한다." 그는 결국 카터의 일자리를 잃게 했고 미국경제를 회복시켰다.
오늘날 미 제국의 이데올로기인 신자유주의 기초를 닦은 것으로 평가되는 레이건과 그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신봉자인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여러 가지로 닮았다. 부시 대통령 자신이 레이건을 정치적 아버지라고 공공연히 부르기도 하지만 감세정책, 힘 우위의 외교정책 등 레이건 시절의 정책들은 부시 정부에서 부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낙천적 성격,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각각 몰아붙이는 단순함, 축복 받지 못한 지식수준 등도 두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다.
두 사람 간에 차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레이건은 가진 자의 논리를 대변하면서도 서민취향과 진실성으로 계층을 뛰어넘어 누구와도 친해지고 대화를 통해 설득시킬 수 있었다. 이런 면이 그의 레이거노믹스가 빈부격차를 크게 늘렸다는 비판을 상쇄하지는 못하겠지만 그에겐 '위대한 의사 전달자'라는 찬사가 안겨졌다. 반면 부시는 소탈을 추구하지만 몸에 밴 귀족적 풍모는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부시는 '별 놈의 보수'의 일종인 온정적 보수(Compassionate Conservatism)를 표방했지만 그의 보수에서는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레이건은 소련과 대결하면서 동맹국들과 함께 갔지만 부시는 이라크전을 강행하면서 일방주의로 밀어붙였다. 순수함이 뒷받침된 레이건의 단순함은 협상에서 큰 힘이 됐지만 부시의 단순함은 협상의 무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작은 차이가 공통점을 많이 가진 두 보수주의자의 정치적 역량과 업적을 크게 다르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 일고 있는 전국민적 레이건 추모열기는 명백히 부시의 일방주의에 책임이 있어보이는 미국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결국 11월 대선에서 부시에게 구원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시가 레이건의 진정한 정치적 면모를 상속 받지 못하고 레이건에 대한 향수의 반사이익만 취한다면 자신은 물론 미국과 세계에도 불행이 될 것이다.
/이계성 국제부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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