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모(29)씨는 최근 주차를 하다 자신의 차 전조등이 깨지는 바람에 동네 카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카센터에서는 자신들은 전조등 교체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자동차관리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전조등 탈부착은 1,2급 공업사에서만 할 수 있고 3급 경정비 사업소에서는 불법이라는 것. 김씨가 직접 전조등을 교체해도 김씨는 범법자가 된다.
운전자들에게 더 곤혹스러운 것은 1,2급 공업사에서는 전조등 교체 등의 간단한 수리는 동네 카센터(3급 경정비 사업소)로 가라며 돌려 보내기 일쑤라는 것. 자동차관리법 개정 시민연대 관계자는 "현행 자동차관리법은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법인데다 국민들을 모두 범법자로 만드는 법"이라며 "전국자동차동호회연합 및 정비연합 등과 힘을 합쳐 자동차관리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1,500만대에 이르는 등 이미 자동차 보유대수면에서는 자동차 강국이 됐지만 관련 법규의 미비와 자동차에 대한 인식은 아직 선진국 수준에 미흡하다. 자동차는 늘었지만 자동차 문화는 이에 따라가지 못하는 '자동차 문화지체' 현상인 셈이다.
최근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가 안전운전교실을 전면 중단한 것도 이러한 불균형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경찰이 4월 운전학원이 아닌 곳에서 유상 교육을 실시,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다며 관계자 2명을 불구속 입건한 것. 스피드웨이측은 운전학원 등록도 신청했으나 수용할 수 있는 법이 없다며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진 자동차 국가들이 자동차 기술 발전 등을 위해 자동차 경주 대회를 적극 육성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자동차 관련법의 미비가 결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곡선 주행시 핸들을 틀면 전조등의 각도가 먼저 주행 방향쪽으로 조정돼 운전자의 시야를 확보해 주는 첨단 기술(AFS)은 국내 자동차 안전 기준과 다르다는 이유로 수입차에서도 쓸 수 없다. 앞 유리에 주행정보를 반사, 계기판을 따로 볼 필요가 없는 '헤드 업 디스플레이' 장치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등은 주한유럽연합(EU)상공회의소를 통해 이러한 기술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등 통상마찰마저 야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감소추세이나 아직 선진국 수준에 못미치는 것도 자동차 문화 발전을 위해 개선돼야 할 사항이다. 2000년 29만481건에 달했던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2001년 26만579건, 2002년23만953건으로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발생건수(2002년 기준)는 영국과 미국이 각각 72.7건, 87.2건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47.5건이나 된다.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수도 영국과 일본이 각각 1.1명과 1.2명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4.5명에 달한다. 지속적인 교통질서 및 교통안전 캠페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교통사고가 많은 것은 국민성이나 운전자들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턱없이 부족한 도로 인프라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도로 1㎞당 자동차 대수를 보면 미국이 34대, 프랑스가 37대, 일본이 63대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무려 142대나 된다. 자동차 증가율을 따라 가지 못하는 도로 인프라가 결국 교통 사고 발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좁은 도로에 차만 늘어나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고 여유를 갖기도 힘들다는 설명이다.
이와함께 자동차 문화 발전을 위해 자동차 제조사와 정비업계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제1회 자동차의 날 자동차문화부문 산업훈장을 받은 르노삼성차 오정환 부사장은 "할인받아 구입한 차가 알고보니 더 싸게 팔리고, 저렴하게 고쳤다고 생각했던 차가 사실은 바가지였다는 얘기들이 우리 주위에서 사라질 때 자동차 문화가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 부사장은 이어 "절대 속이지 않는 정도영업과 투명성 확보를 통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자동차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전문가 제언/車 세계4강 진입 관건은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구축
우리 자동차 산업의 궁극적 목표는 세계 4강 진입이다. 미국, 일본, 독일의 '빅3'에 이어 우리나라가 세계 4강이 되기 위해서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전통의 자동차 강국인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이겨야만 한다. 또 자동차 생산 규모를 연간 650만대 이상으로 늘려 국내에서 450만대를 생산하고 해외 현지에서 200만대 이상을 생산하는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첫째 노사관계의 안정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문제, 사회공헌기금 조성 등 노사간의 쟁점사항들은 계속해서 논의하며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야 할 사안이다. 파업 등의 극단적 수단을 동원해서는 결코 안된다. 해마다 파업이 재연됨으로써 산업발전에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둘째 환경친화적인 미래형 자동차 개발에 대규모 지원을 해야 한다. 향후 자동차산업은 친환경자동차와 관련한 핵심기술의 확보가 생존의 관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매년 1,0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정부차원의 대규모 연구개발(R&D) 프로젝트가 추진돼야 한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은 이미 자국의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연료전지 자동차 등의 개발에 막대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셋째, 자동차 부품업체를 전문화, 대형화시켜야 한다. 핵심부품 및 시스템 분야의 기술 자립 확보로 우리나라를 세계적인 부품공급기지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차원에서 자동차부품연구원(KATECH)을 중심으로 산학연 공동으로 핵심 부품개발 및 모듈화 개발 자금 등을 지원해야 한다.
넷째, 불합리한 자동차관련 세제의 전면개편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자동차세금은 유별나게 종류가 많아 복잡하고, 세율도 매우 높다. 우리나라에선 자동차와 관련, 총 12가지 세금을 내고 있어 미국과 독일의 4가지, 일본의 7가지 등 선진 외국에 비해 턱없이 많다.
마지막으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추진과 관련, 산업경쟁력 제고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 한칠레 FTA 체결시 가장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에 대해 정부가 대폭 지원키로 한 것과 같이 한일 FTA 체결시 국내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상당기간 관세 철폐를 유예하거나 자동차 업계에 대한 지원 등이 수반돼야 한다.
/남충우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상근부회장
■같은車 인데 "승용차" "화물차"/차종 구분 재경·건교·환경부 "제각각"
'기아차 쏘렌토는 승용차일까, 승용차가 아닐까?', '쌍용차 무쏘 스포츠는 화물차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자신있게 답했다면 십중팔구 틀린 답을 말한 것이다. 건교부, 환경부, 재경부 등 자동차 유관부처 별로 자동차 구분 기준이 모두 달라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아차 쏘렌토는 건교부 기준에 따르면 승용차이지만 재경부는 이를 일반형 승용차와 구분, 지프형 자동차로 보고 있다. 무쏘 스포츠도 건교부로 가면 화물차이지만 재경부에서는 일반형 승용차라는 입장이다.
자동차 차종 구분을 운전자들이 알아보기 쉽게 통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건교부는 자동차관리법에 의거, 자동차를 10인 이하의 승용차, 11인 이상의 승합차, 화물차, 특수차, 경자동차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부는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승용차 1∼4종, 화물차 1∼3종, 경자동차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승용차 1종은 8인 이하, 2종은 다목적형 승용차, 3종은 9인∼15인, 4종은 3.5톤 이상으로 구분하고 있다.
반면 재경부는 특소세법을 기준으로 8인 이하의 '일반형 승용차', 4륜 구동의 '지프형 자동차', 주방설비 등을 갖춘 '캠핑용 자동차' 등으로 나눴다.
이처럼 자동차 구분이 복잡하다 보니 운전자들은 차량 구입시 자신의 차종이 어디에 해당되고 이에 따라 세금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 알 수가 없다. 특히 우리나라 자동차관련 세제는 준조세 성격인 공채를 포함해 취득과정에서 특소세, 특소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록세, 취득세, 공채 등 6가지, 보유과정에서 자동차세, 자동차세교육세 등 2가지, 운행과정에서 교통세, 교통세교육세, 주행세, 부가세 등 4가지 등 총 12가지나 된다. 각 세금별로 승용차와 승합차, 화물차에 따른 세율이 다르다 보니 일반인들에겐 암호해독 수준이다. 한 자동차 제조사 관계자는 "일제 강점기와 1970년대에 기본 틀이 마련된 자동차 관련 법과 세제는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는 만큼 과감하게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일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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