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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老鋪]<37>부산 원조18번완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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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老鋪]<37>부산 원조18번완당집

입력
2004.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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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 그런 음식도 있나? 우리나라 음식은 아닌 것 같은데…. 부산시민을 제외하곤 완당이라는 음식이 귀에 익숙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름만큼 희귀한 까닭이다. 재료가 귀한 것이 아니라 완당을 만들 줄 아는 요리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완당은 한국음식이 아니다.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중국음식이다. 일본에서는 완탕(雲呑)이라고 불린다. 자장면이 우리 입맛에 적합한 음식으로 다시 태어났듯이 완당 역시 중국음식 훈탕을 한국인의 식성에 맞게 변형시킨 일종의 만두국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만두국에 비해 그 맛은 크게 다르다.

우선 만두의 크기가 은행알 만큼 작은데다 피도 종잇장처럼 얇다. 그래서 새끼만두로도 불린다. 채 씹을 틈도 없다. 스르르 녹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입에서 자꾸 재촉한다.

부산 서구 부용동 1-69 '원조18번완당집'은 완당요리의 종가나 다름없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건너가 요리법을 배운 고 이은줄(李殷茁)옹이 47년 창업했다. 창업 장소인 중부산등기소 뒷편에서 현재의 자리로는 72년 옮겨 왔다.

완당피의 두께는 불과 0.3㎜에 지나지 않는다. 책갈피 속에 피를 깔면 그 밑의 글자가 드러난다. 이 집의 주방장 최맹호(崔孟浩·58)씨는 갓 빚어낸 완당을 '나비'라고 부른다. 그 생김새가 영락없이 나비를 닮았다. 가로, 세로 각 8cm 크기의 정사각형 피에 대꼬챙이로 소를 은행알 만큼 찍어 얹고 말아내린다. 그의 손에서 태어나는 완당은 시간당 70, 80개나 된다. 손놀림이 가히 신기에 가깝다. 한 그릇에 완당 25개가 들어간다.

"이제는 피도 기계의 힘을 빌리지만 할아버지는 생전에 전부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피의 두께가 더 얇았지요." 최씨가 말하는 할아버지는 창업자 이옹을 가리킨다. 상호의 머리를 수식하고 있는 18번이라는 숫자는 이옹이 가장 맛 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완당이라는 자부심에서 선택했다. 하기야 한국인에게 18번이란 숫자는 저마다 지니고 있는 특기를 의미하고 있지 않은가. 이옹은 식당운영에 있어서도 18번의 의미를 극대화했다. 영업시작은 오전 8시10분, 마감은 오후 8시10분이었다. 어감상 18번을 거꾸로 읽어서 내는 발음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너희들 중 누가 대를 이어도 좋다. 다만 이익금은 형제끼리 똑 같이 나눠야 한다." 자리를 함께 한 박필희(朴畢姬·85)할머니는 81년 세상을 떠난 남편의 유훈을 들려준다. 할머니는 그러면서 "완당 팔아서 6남매 대학 가르쳤으면 됐지 뭐 더 바랄 게 있겠습니까 만은, 그래도 우리 집이 대를 물려가며 오래오래 손님의 사랑을 받으면 더욱 좋겠지요"라고 말한다. 장남 용웅(龍雄·65)씨는 직장에 다니다가 86년 가을부터 가게 운영을 맡고 있고 막내 아들 명룡(明龍·49)씨도 월급쟁이 생활을 접고 최씨에게 요리법을 배우고 있다.

경남 사천이 고향인 최씨는 초등학교를 나온 뒤 14세 때 소개를 받아 원조18번완당집에 들어왔다. 올해로 벌써 44년째 주방을 지키고 있다. 이옹 부부는 그를 아들처럼 생각했다. 자신에게 무척 엄격했던 이옹은 '적당히'라는 말을 가장 싫어했다. 심지어 부인이 시장을 봐온 재료가 시원찮으면 곧바로 길바닥에 내팽개쳤다. 최씨에게도 그런 완벽함을 요구했다. 이옹은 무엇보다 육수의 맛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처음 몇 년간 최씨는 숱하게 육수를 갖다 버려야 했다.

이옹은 자부심이 남달랐다. 누구보다 맛 있는 음식을 만든다고 생각했으니 당연했다. 그 앞에서 빨리 달라는 재촉은 금물이었다. 그런 손님은 자신의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고 "가서 볼일부터 보시라"고 은근히 나무랐다. 그의 손 맛을 기억하는 나이 지긋한 손님들은 "할아버지 요리솜씨는 인간문화재감"이라고 회고한다. 8년 전부터 피를 만들고 국수발을 뽑는 과정은 기계가 대신한다. 손에 의존해서는 주문에 대기도 어려운데다 일손을 덜기 위한 선택이었다. 박할머니는 세태의 변화를 거스를 수 없다고 인정은 하지만 아무래도 '할배'가 직접 손으로 만들어 내놓던 옛날의 맛을 잊지 못한다.

이옹은 16세 때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조선청년이 일본서 할 수 있는 일은 몸으로 때우는 노동 밖에 없었다. 온갖 험한 일을 전전하다가 다행히 일본인식당에 취직, 완당요리법을 배우게 됐다. 오사카 시장골목에 포장마차를 차려 놓고 완당을 만들었다. 맛이 있었던지 하루에 200그릇 정도는 팔렸다. 일본에서 박할머니를 중매로 만나 결혼 한 그는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광복과 더불어 귀국했다. 처음에는 다른 사업을 벌였다. 음식장사의 고단함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탓이었다. 그러나 손대는 일마다 실패를 하고 빈털터리가 되자 할 수 없이 완당집을 냈다. 이게 천직인 모양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젊은이는 물론 어린아이들도 많이 찾는다. 평일 점심시간이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손님이 밀린다. 일부러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일본인 관광객들은 "이렇게 맛 있는 완당과 메밀국수는 처음 먹어본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이은줄 할아버지는 생전에 완당이 널리 사랑받는 음식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조리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없다. 그럼에도 완당은 해양수도를 자임하는 부산에서 해산물을 식재료로 거의 넣지 않으면서도 향토음식에 버금가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기창 편집위원 lkc@hk.co.kr

도움말 김용범(소설가)

■돼지·닭뼈 등 넣고 육수 2시간이상 끓여 구수하고 영양 만점

완당피는 만두보다 더 얇다. 두께가 고작 0.3㎜에 지나지 않는 피가 찢어지지 않는 비결은 반죽에 있다. 밀가루에 감자전분을 알맞게 쳐가며 반죽한다. 피가 얇을수록 밀가루 음식 특유의 텁텁한 맛이 사라진다. 중국과 일본의 완당은 피가 훨씬 두껍다. 완당은 끓는 물에 잠깐 담갔다가 꺼낸 뒤 육수를 부어 손님상에 내놓는다. 육수의 시원하고 담백한 맛은 해장음식으로도 제격이다.

완당소는 간 삼겹살에 다진 파와 마늘, 간장, 참기름, 계란, 생강, 후추 등을 넣고 고르게 비빈다. 고소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그만이다. 육수는 멸치 다시마 돼지뼈와 닭뼈 등을 넣고 2시간 이상 센 불로 푹 끓인다. 그런 다음 돼지뼈와 닭뼈는 건져낸다. 그래야 맑으면서도 구수한 육수가 우러나온다. 돼지와 닭뼈를 넣어 육수를 만드는 조리법은 이은줄옹의 경험에서 나왔다. 단백질 섭취량이 크게 부족했던 40, 50년대 우리의 실정도 고려한 영양학적 조리법인 것이다. 원조18번완당집에서는 메밀국수를 발국수라고 부른다. 처음 오는 손님은 발로 반죽해서 만드는 국수냐고 물어본다. 발국수라는 명칭은 가는 대오리로 만든 작은 소쿠리에 국수를 얹어 손님상에 내놓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메밀과 밀가루를 반씩 섞어 국수발을 뽑는다.

완당과 발국수 외에 교자완당도 손님들이 즐겨 찾는 메뉴다. 소는 돼지고기와 쇠고기로 만들며 완당의 5배 크기로 빚는다. 물만두처럼 소스에 찍어 먹는데 완당 맛과는 또 다른 풍미를 자아낸다. 소스는 간장, 식초, 겨자를 넣고 만든다. 완당면은 육수에 라면발처럼 가는 국수를 넣는다.

완당, 발국수, 완당면은 4,000원, 쇠고기 교자완당은 6,800원, 돼지고기 교자완당은 5,8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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