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 파문으로 전세계가 시끄럽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필자는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다. 가해자인 미군 병사들도 사람일진대 인간 내부에 그런 끔찍한 본성이 숨어있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더구나 그들이 그토록 잔인한 행동을 하면서도 태연히 웃고 있는 것을 보면 "군대라는 집단 내에서 집단 광기에 빠져 그런 행동을 스스럼없이 저질렀구나"라고 생각돼 더욱 안타까웠다.
'집단 광기'란 보통사람이 집단 속에서 비이성적인 행동을 스스럼없이 자행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중세 마녀사냥, 십자군전쟁, 나치즘 등 보통사람이 벌인 끔찍한 이런 일이 그리 드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 of Christ)에서도 군중은 자신들이 얼마나 잔인한 행동을 하는지 모른 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다.
일상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집에선 착하던 아이가 학교에 가서는 힘없고 불쌍한 친구를 집단적으로 따돌리고, 어른들은 학연과 지연에 얽혀 우리 편만 챙기고 감싼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사람들은 자신의 집단에서 소속감을 통해 의존심을 충족시키고 평안함을 얻는다. 이런 집단에서 목소리 큰 주장이 나오면 개인은 그것을 쉽게 거부하기 어렵다. 목소리 큰 주장을 다수 의견으로 생각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이 위축되다 보면 결국 집단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으로 착각해 집단 의지대로 자신이 움직이게 된다.
우리는 어떠한가? 이런 생각을 넓혀 지금 우리 모습을 바라보면 서글픈 일이 너무나 많다. 정치·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서로 편을 갈라 대결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예전에는 지역끼리만 나뉘어 서로 미워했는데, 요즘엔 세대·계층·직종 간에도 패를 갈라 싸운다.
이런 일을 극복하기 위해선 가끔씩 자신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 찬찬히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자기의 생각이 합리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는지, 자기가 너무 집단의 생각에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야 한다. 또한 자기가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의 입장과 생각도 이해하려고 애쓰고, 양보하고 협조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집단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면 모두에게 이로운 행복한 공동체 의식을 키워나갈 수도 있지만, 집단에 매몰되고 편을 갈라 싸우면 집단 광기에 빠지기 쉽다. 우리에게는 대한민국이란 더 큰 집단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2002월드컵을 통하여 대한민국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면 얼마나 행복한가를 가슴 벅차게 경험하지 않았는가. 오! 필승 코리아!
박원명/가톨릭대 의대 성모병원 정신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