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미야, 평소에 하던 대로 잘 달려줘야 내가 무사히 성화봉송을 할 수 있단다."2004 아테네올림픽 성화 서울 봉송에 시각장애인 김예진(25·여·이화여대 4년 휴학중)씨가 나선다. 김씨는 120명의 봉송자중 6번째 주자로 7일 오전 서울 잠실 롯데백화점 앞에서 성화를 인계받아 여의도 방향으로 400여m를 자신의 인도견인 '새미'와 함께 달리게 된다.
김씨는 "맹인 인도견을 관리하는 업체에서 성화봉송을 하지 않겠냐고 묻기에 흔쾌히 수락했다"며 "눈이 안 보이는 것쯤은 일상 생활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성화 봉송 수락이후 김씨는 지난달 말부터 아침이면 새미와 함께 집앞 공원을 두 세바퀴씩 돌며 성화봉송을 위한 맹훈련을 거듭했다.
그는 "새미와 함께 보폭을 맞춰 뛰어봤는데 처음에는 서로 속도가 달라 스텝이 엉키기도 했다"며 "잘못하면 장애인 모두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연습을 계속했더니 이제는 새미와 한 몸이 돼 뛰는 것 같이 자연스러워졌다"고 말했다.
생후 15개월만에 뇌막염으로 인한 고열로 양쪽 눈의 시력을 모두 잃은 김씨는 서울 맹학교를 나와 1997년 이화여대 특수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같은 시각장애인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와 맹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은사처럼 되고 싶어서였다. 고교시절에는 부모님이 등·하교를 도와줬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는 인도견 센터에서 분양 받은 새미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3학년을 마친 뒤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학교를 휴학했다. 김씨는 "주변에서 제 건강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데, 이번 기회에 건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여러 모로 의미가 깊다"며 "어머니도 1988년 서울 장애인올림픽 때 장애인 부모 대표로 성화봉송에 참여한 적이 있어 2대째 성황 봉송을 한 '명문' 가정이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씨는 "장애인들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문화·체육행사에서는 아웃사이더에 머무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번 성화 봉송을 계기로 장애인들이 적극적인 문화주체로 대접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재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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