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던 신행정수도 이전안이 대통령 직속 산하기관인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에서 구체화되었다. 위원회는 세미나 및 10여회의 간담회 등을 거치며 신행정수도 건설의 당위성과 이점을 홍보해 왔으므로 여론 반영은 충분했다는 입장이다.그러나 정작 행정수도 이전의 정당성과 경제적, 법적, 사회적, 문화적, 외교적, 안보적 문제 등 실질적이고 중대한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위원회 측에서 예상하는 실익이 얼마나 정확하고 현실성이 있는지도 의문시 된다. 정부는 행정기관의 일부만을 옮겨 중앙행정기관 중심의 클러스터링 체제(연관산업과 기관을 한곳에 집중화함으로써 효율성 극대화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방식)를 만들겠다고 주장하지만, 여기에는 사실상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까지 옮기는 600년 도읍의 천도에 버금가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음을 제대로 간파하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구심이 든다.
20일께 충청권 내 입지후보지가 압축 선정되어 발표될 예정인 가운데 다음달 말에는 이전계획이 확정되어 2007년부터 착공에 들어갈 것이라는 더욱 구체화된 발표가 나오면서 수도 이전에 위헌 소지가 있음을 주장하는 변호사들과 '수도 이전 반대 국민포럼' 등 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측의 구체적 대응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이에 대해 위원회 측은 '뒤늦은 반박'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인 반박은 법률안이 통과된 후에야 구체적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반대 입장을 시간상의 문제로 힐난하며 잠재울 일은 아니다.
신행정수도 건설이 진정으로 합당한 일이라면 반대입장을 억지로 잠재우려 할 것이 아니라 법적인 문제, 과열된 충청권의 부동산 문제, 비용편익 문제 등 제반 문제점에 대해 공개적인 국민토론의 형태로 함께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국민투표 절차를 거치자는 반대측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위원회는 국민투표에 들어가는 비용문제 등을 들어 여론조사 정도로 그치자는 입장이나 탄탄한 여론수렴과 국민 다수가 함께 하는 법적, 실질적 검증은 대통령 탄핵 문제 때만큼이나 필수적인 것이다.
위원회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달성을 위한 행정수도 이전의 의미를 강조하며 2030년까지의 예상비용을 45조6,000억 원으로 추산하지만 편익은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선거 공약 당시 행정수도 이전비용을 8조 원으로 내걸었던 것을 감안하면 추진 과정에서 비용 부담은 훨씬 늘어날 우려가 있다. 또 행정수도만의 이전이 아닌 주거 및 문화설비 등 모든 시설을 구축하는 신도시 형태이므로 사회기반시설 등에 투입되는 비용도 늘어날 공산이 크다. 이러한 막대한 혈세는 차라리 현 지방정부에 고루 분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장기적으로 전 국토의 균형발전 명제를 감안하더라도 그것이 타당성이 있다.
국토균형발전과 2만 달러 달성은 국민 모두의 바람일 것이지만 브라질이나 독일 등과 같은 외국 사례를 피상적으로 답습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탄핵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행정수도 이전작업이 진행되어 막대한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어 너무 늦은 시점이 아니라 바로 지금 법적 절차와 국민투표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는 브라질도 아니고 독일도 아니다. 일제 식민통치를 겪었고 50년 이상 분단되어 있는 특수한 상황이다. 통일 후를 내다보는 긴 안목에서, 지난 대통령 선거의 커다란 표밭이었던 충청권이 아닌 제3의 지역을 후보지로 모색해야 할 지도 모른다. 국회의원 몇 명이 아닌 국민 모두의 의견을 진지하게 수렴하여야 할 것이다.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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