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박수정 지음
이학사 발행·9,800원
'초등학교 2학년인 연이는 오빠들과 살고 있다. 엄마는 연이가 태어난 지 백일 만에 가출했고 아빠는 건설 노동자로 지방을 돌아다닌다. 아빠는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와서 빨래도 하고, 반찬도 채워놓고, 연이의 그리움도 채워놓고 간다.'
'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워진 그늘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자 박수정(35)씨는 바로 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당찬 아줌마. 이화여대 철학과를 나와 노동자문학을 하기 위해 구로노동자문학회를 찾았고, 거기서 노동운동을 하는 남편을 만나 10년째 구로동에서 살면서 이웃의 삶을 담았다.
그가 만난 이웃들은 공부방에 모인 아이들, 영등포역의 노숙인들, 한 달에 19만원의 생활지원금을 받아 사는 87세의 할머니, 한국에 와서 사기당한 조선족, 탈북자 장철봉씨,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할아버지 등이다. 모두 우리 사회의 무관심 속에 폭력에 노출된 채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람들이다.
추운 방에서 지내다 이웃집 따뜻한 방에서 하룻밤 자고 나자 귓속에서 얼었던 물이 흘러나왔다는 할머니, 끼니 때마다 밥 아닌 소주만 들이켜고 있는 40대 노숙인들의 가슴 아픈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상처를 어루만진다.
조선족 왕수금씨와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할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중국 무단장(牧丹江)시 회계과장으로 일하던 왕씨가 남편과 사별한 후 한국인을 만나 결혼하고, 그를 따라 한국에 들어왔지만 사기를 당해 7,000만원 이상을 날린 후 음식점에서 일하기까지의 과정은 거짓말처럼 들리는 현실이다. 또 저자가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할아버지와 11시간 동안 인터뷰하고 쓴 '43년 세월 속에 묶인 이야기들'은 안 할아버지가 20대 초반 한국전쟁때 인민군으로 내려와 포로가 된 후 겪은 끔찍한 폭력의 시간을 고발하는 인권투쟁기이기도 하다.
이 글들은 박씨가 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과 계간 '진보평론'에 연재한 것이다. 저자가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처지를 살피고 배려한 점이 돋보이면서, 표현과 묘사도 소설이나 희곡을 쓰고 싶었다는 저자의 솜씨로 수준급이다. 그는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 속에 담긴 세상, 사회, 인간, 고민을 읽어야 하는데 항상 역부족을 느꼈다"며 "글을 발표하고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난 이웃들의 삶이 더 깊은 나락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고 털어놓았다.
우리나라 가구 중 10%가 월 수입이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92만원)에 못 미치는 절대빈곤층이다. 통계가 발표될 때나 반짝 관심을 가질 뿐 그들의 삶을 제대로 조명하거나 추적하는 글은 별로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삶의 질곡으로 고통받으며 자식의 목숨까지 끊는 이가 생기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일종의 참회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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