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6월5일 이스라엘군이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와 이라크 공군기지들에 대해 대규모 공습을 벌이면서 제3차 중동전쟁이 터졌다. 1948년 5월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 직후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벌어진 제1차 중동전쟁, 그리고 1956년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의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이 촉발시킨 이스라엘·영국·프랑스와 이집트 사이의 제2차 중동전쟁에 이어 11년 만에 중동지역에서 다시 터진 이 전쟁은 6일 만에 이스라엘측의 승리로 마무리돼 6일전쟁이라고도 부른다. 다시 여섯 해 뒤인 1973년에는 이스라엘과 이집트-시리아 사이에 제4차 중동전쟁이 터진 바 있다.국제 여론의 악화로 영국·프랑스가 발을 빼면서 이스라엘도 점령지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제2차 중동전쟁을 포함해, 이스라엘은 이 모든 전쟁에서 한 차례도 지지 않았다. 특히 6일전쟁은 이스라엘군의 무용(武勇)이 인상적으로 발휘된 전쟁이었다. 기습 공격으로 개전 수시간 만에 아랍측의 공군력을 무력화한 이스라엘은 지상전에서도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며 나흘 만에 이집트의 시나이반도와 가자지구를 점령했고, 이어 시리아 남서부의 골란고원도 손아귀에 넣었다. 시나이반도는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1982년 이집트에 완전히 반환됐다.
네 차례의 전쟁 이후에도 중동지역은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릴 만큼 그 정세가 불안하다. 이 불안의 핵심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국제 여론의 관심을 덜 끌고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다. 독립적인 '팔레스타인 국가'를 이스라엘 국가가 인정하고 공존을 모색할 때에만 이 지역에서 포연이 사라질 것이다. 이스라엘에게는 아직 그런 뜻이 없는 듯하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권력자들에게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 미국에게도, 아직 그런 뜻이 없는 듯하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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