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훔치는 사람들필립 쿤 지음·이영옥 옮김
책과함께 발행·1만8,000원
'누군가의 이름을 적은 종이조각이나 머리카락에 요술을 걸어 사람들을 병들어 죽게 한 다음 영혼의 힘을 훔쳐 간다는 소문이 농민들의 초라한 집에서 황제가 사는 궁궐까지 온 나라에 퍼졌다. 사람들은 광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1768년 중국. 청 왕조의 네번째 황제로 가장 뛰어난 만주족 황제로 꼽히는 건륭제 연간의 치세 한복판에서 중국은 이상한 공포와 집단 광기를 경험한다. 양쯔강 하류에서 처음 생겨난 소문은 강을 넘어 화북 지방을 휩쓸었고, 마침내 베이징까지 다가왔다. 사람들은 영혼을 빼앗는다는 요술사를 잡아내기 위해 혈안이 됐고 근거 없는 사형(私刑), 집단 린치가 난무했다. 급기야 이 사건을 만주족에 대한 집단 항거라고 본 건륭제가 요술사 체포령을 내릴 정도였다. 결국 사건은 채 1년이 안 돼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태평성대의 중국에서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걸까? 필립 쿤 하버드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는 청이 1840년 아편전쟁에 패해서 결정적으로 몰락하기 훨씬 전부터 백성들의 마음 속에서부터 무너지고 있었다고 결론짓는다.
겉으로 풍요로웠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인구 증가와 토지 부족으로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고, 요술사는 이런 답답한 삶을 일시 해소할만한 대상이었다. 여기에 버마 원정에 실패해 어려움을 겪던 황제의 정치적인 계략과 마녀 사냥을 통해 권력을 맛보려는 군중심리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개화 직전 중국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당시의 집단 광기가 어떻게 생겨나고 또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지 자세히 살필 수 있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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