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 경주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다. 천년 동안 한 왕조의 수도였으니 구석구석 사연이 배어있다. 이중 사찰은 호국불교로 일컬어지는 신라불교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 불국사, 감은사, 분황사, 석굴암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절도 많지만, 덜 알려진 사찰 중에도 나름의 역사와 멋을 간직한 곳이 적지 않다. 골굴사(주지 설적운)가 대표적이다.골굴사는 경주 동쪽의 감포에서 20㎞ 가량 떨어진 함월산 자락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절이다. 국내에서 유일한 석굴사원인데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6세기 인도의 광유성인이 이 곳에 마애여래불과 석실을 지었다고 하니 역사적으로 불국사보다 200년을 앞서는 셈이다.
골굴사가 최근 경주 웰빙여행의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외국인을 상대로 불교문화 알리기 차원에서 실시하던 템플스테이(temple stay)의 본산으로, 불교의 전통무술인 선무도(禪武道)의 도량으로 명성이 얻으면서부터다. 골굴사로 가는 길은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여행의 첫걸음이다.
경부고속도로 경주톨게이트에서 나와 보문관광단지를 가로질러 4번 국도를 따라 감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안동사거리가 나온다. 이 곳에서 좌회전, 500m를 가면 골굴사 진입로가 나온다. ‘함월산 골굴사’라고 적힌 일주문을 지나 1㎞쯤 산속으로 들어가면 골굴사에 다다른다.
우선 절을 찬찬히 살펴본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같은 바위 위에 4m 높이의 마애여래불좌상(보물581호)이 새겨져 있다. 여래불을 중심으로 12개의 동굴이 있고 곳곳에 부처님을 모셔놓았다.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인가 했더니 모두 사람의 손으로 파낸 것이라고 한다. 패여진 곳들이 마치 해골처럼 생겼다. 그래서 절이름도 뼈 ‘골(骨)’자에 동굴 ‘굴(窟)’자를 써서 지었다.
여래불까지 오르는 계단이 몹시 가파르다. 일부 구간은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각 동굴속의 부처님을 보고 나면 땀으로 범벅이 된다.
간단한 경내순례를 마치고 본격적인 템플스테이에 들어간다. 절에서 500m 떨어진 곳에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수련장이 있다. 시설이 깨끗한데다 샤워시설과 화장실도 현대식이어서 불편함이 없다. 오후 10시, 취침시간이다. 수련장의 모든 불이 꺼진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이른 시간이지만 내일 아침을 위해서라도 일찍 자두어야 한다.
다음 날 오전 4시. 동틀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칠흙 같은 어둠을 뚫고 은은하게 들리는 목탁소리에 잠을 깬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이불을 개고 바깥으로 나와 법당에 들어서면 새벽예불이 시작된다. 종교적인 의미라기보다는 몸과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다.
예불이 끝나면 곧장 좌선이다. 결가부좌 상태로 40분~1시간 정도 진행된다. 피곤함을 못이겨 고개가 앞으로 고꾸라지는 순간, 어김없이 죽비세례가 이어진다. 아프지는 않지만 정신이 바짝 든다. 졸음을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경우 법당 밖을 천천히 걷는 행선을 할 수도 있다.
아침식사 시간은 오전 7시. 아침공양 혹은 발우공양이라고 한다. 불가의 전통적인 공양의식이다. 개인당 지급받은 그릇 4개에 밥, 국, 반찬, 물 등을 담는다. 반찬은 두부, 나물, 김치, 감자 등으로 조미료를 쓰지 않는 무공해음식이다. 뷔페식으로 먹을 만큼만 퍼간다. 밥, 국, 반찬을 모두 먹은 뒤 숭늉으로 헹궈내 찌꺼기를 남기지 않고 모두 마셔야 한다.
설적운 주지는 “패스트푸드가 발달해 음식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며 “발우공양은 음식을 귀하게 대하며 환경문제까지 생각할 수 있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볼 하다”고 말한다.
식사를 마치고 선무도 수련 및 강의가 이어진다. 선무도는 신체의 유연성과 균형을 통해 불교의 이상세계를 구현한다는 수행과정 중 하나.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동작을 익혀야 하지만 초보자에게는 명상이나 요가를 통한 정신수양에 중점을 둔다. 유연공, 오체유법 등을 통해 신체 각 부위를 부드럽게 풀어주고 생리적 균형과 심리적 안정을 취하게 된다.
오전수련을 마치면 점심시간. 발우공양 형태의 아침과는 달리 점심, 저녁은 일반 절밥을 먹는 시간이다. 식당에서 차려주는 음식을 먹는다. 역시 음식을 남기는 것은 금물. 아침에 비해 반찬거리도 많은 편.
오후에는 선무도의 동작을 배우는 시간도 마련되며, 이 때 출중한 무예를 가진 스님들의 시범을 볼 수도 있다. 선무도 강의 이외에 농장가꾸기, 도량정비 등 간단한 노동도 필수사항이다. 오후 6시 저녁공양직후 저녁예불과 수련이 이어지고 오후 10시면 다시 취침에 들어간다.
■이용 안내 /1박2일 식사포함 1인당 3만원
골굴사 템플스테이는 원래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사찰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마련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지금은 일반인들에게도 큰 인기가 있다. 주로 1박2일로 진행되며 4끼 식사를 포함, 1인당 3만원. 외국인의 경우 통역 등 여러가지 배려를 해야 해 40달러를 받고 있다. 골굴사 (054)744-1689. 인터넷 홈페이지 www.golgulsa.com, www.sunmudo.com
/경주=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