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립교향악단이 시애틀에서 뉴욕까지 미 대륙을 횡단한다. 창단 20주년 기념으로 미국의 4개 도시 순회공연에 나선다. 8일 대전의 자매도시인 시애틀의 베나로야 홀 연주를 시작으로 10일 볼티모어의 메이어호프 심포니 홀, 12일 필라델피아의 킴멜센터, 끝으로 14일 뉴욕의 카네기홀 무대에 선다.이번 연주 여행은 올해로 성년을 맞은 대전시향의 자신감과 의욕을 과시한다. 교향악단의 외국 나들이는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는 데 따른 비용도 비용이지만, 현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냉정한 비평을 생각할 때 음악적으로 자신이 없으면 나서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번 여행의 공연장은 모두 최근 개관했거나 음향 개보수를 마친 심포니 전용홀이다. 미국의 일급 교향악단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볼티모어 심포니 등이 상주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이런 홀에서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대전시향은 자부심을 느낄 만 하다.
대전시향이 미국에서 연주할 곡은 조상욱의 '옛날 옛적에', 미국 작곡가 토머스 더피가 미국 노래와 우리나라 아리랑을 주제로 만든 신작,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과 브루흐의 바이올린협주곡.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이 협연자로 동행한다.
대전시향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함신익(46)은 "미국 최고의 홀에서 멋지게 연주함으로써 지방 오케스트라의 열등감을 깰 것"이라고는 자신있게 말한다. 2001년 대전시향에 부임했을 때 그는 단원들에게 "3년 내에 여러분을 미국에 데려가겠다"고 약속했었다.
오케스트라 발전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지휘자 혼자의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전시향에서 함신익은 그런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참신하고 다양한 기획으로 관객 몰이에 성공, 연주회마다 청중이 꽉꽉 차고 매번 200∼300명이 표가 없어 되돌아가는 매진 사례가 벌어지고 있다. '높은음자리표' 라는 후원회가 생겼고 시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후원회원들은 외국에서 오는 객원 지휘자나 협연자에게 자기 집을 숙소로 제공하고 관광 안내까지 맡는 열성을 보이고 있다. 시는 단원들의 보수를 40% 인상해 국내 최고 수준인 KBS교향악단 버금가는 대우를 해주고 있다. 단원들은 잔뜩 고무돼 있다. 외국에서 좋은 연주자가 올 때마다 협연 외에 1주일 정도 따로 진행하는 악기별 워크숍 덕분에 기량도 크게 향상됐다. 함신익은 "단원 개개인이 국내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체 앙상블과 팀워크는 국내 최고라고 자부한다"고 말한다.
함신익이 온 뒤로 대전시향의 연주는 기존의 3배인 연간 60회로 늘어났다. 정기연주회인 마스터 시리즈 외에 초보 관객들을 위한 디스커버리 시리즈, 초중고 학생들을 위한 청소년음악회, 직장인을 위한 찾아가는 음악회 등 다채로운 기획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또 지난 10년간 대전시향이 한 번도 안 해본 곡을 꾸준히 연주함으로써 레퍼토리를 넓혀가고 있다.
"국내 교향악단의 발전을 가로막는 고질병으로 흔히 예산과 지원 부족을 꼽지만, 남 탓 하기에 앞서 먼저 교향악단이 변해야 합니다. 청중이 없어도 망하지 않고 100명이 오나 1,000명이 오나 똑같은 월급 받는 오케스트라가 말이 됩니까. 그런 생각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대전시향의 눈부신 급성장은 국내 여러 교향악단들이 배우러 오는 벤치마킹 사례가 되고 있다. 지난달 대구 공연에서 대전시향은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 공연을 본 대구 관객이 대전시향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대전으로 이사가고 싶다"는 글을 남길 만큼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한국 오케스트라 운영의 새로운 모범을 만들겠다"던 함신익의 의지는 착착 전진하고 있다.
미국 예일대에서 지휘를 가르치며 앨러배마 주립 투스칼로사 심포니 상임지휘자로도 활동 중인 그는 오케스트라 살리기의 명수다. 단돈 200달러를 갖고 건너간 미국에서 유학 시절 만든 길거리 오케스트라 깁스의 성공은 지금도 명문 이스트먼 음대의 전설로 남아있고, 그린 베이 심포니, 밀부룩 오케스트라, 에벌린 필을 차례로 맡아 각각 지역 명물로 키워냈다. 이 패기만만하고 정열적인 지휘자는 국내 다른 교향악단의 겸임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 "두 여인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 오직 한 여인만을 뜨겁게 사랑하겠다." 대전시향이 충분히 클 때까지 전력투구하겠다고 말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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