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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경제위기보다 무서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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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경제위기보다 무서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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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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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논쟁을 접할 때마다 불안하다. 논쟁이 대립으로, 아집으로 악화돼 정작 경제위기가 찾아왔을 때 오히려 위기에 둔감해져 판이 깨지는 일을 가까이서 지켜봐서 그런 모양이다.기자가 재정경제원을 취재하던 1997년 이맘때도 경제위기 논쟁이 있었다. 5월 들어서만 대농그룹 한신공영 등 재벌들이 연쇄 부도 상태에 빠져 위기감이 팽배했다. 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는 시중에 돌던 6월 금융대란설에 대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강 전 부총리의 주장은 일단 맞았다. 물가안정 속에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무역수지가 2년반 만에 처음 흑자로 돌아서는 등 거시지표에 청신호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거시지표에 고무된 듯 7월2일의 '환란일기'에 "불안감 없이 경제가 풀려가고 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며칠 뒤인 7월5일에 태국의 바트화가 폭락하며 아시아 외환위기의 막이 올랐다. 또 강 전 부총리가 이즈음 야심차게 추진하던 금융감독체제 개혁안은 재경원과 한국은행 사이에 처절한 밥그릇 싸움으로 번져 금융위기 경보장치를 마비시켰다. 기아 사태가 터진 것도 6월이었다.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부도위기에 몰린 기아자동차 해법으로 '국민기업 기아 살리기'에 나서는 등 포퓰리즘이 대선 분위기와 맞물려 기승을 부렸다.

강 전 부총리는 당시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은 괜찮다"며 경제위기론을 맞받아쳤다. 기업은 겁나게 망가져갔지만 금리 물가 환율 수출 실업 등 각종 거시지표는 멀쩡했기에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는 일부 세력이 위기를 침소봉대해 경제위기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며 직접 지방을 돌며 펀더멘털론을 펴기도 했다.

지금도 경제위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연세대 특강에서 "경제위기론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탄핵기각 직후인 15일에는 "(경제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 중에는 순수한 우려도 있지만 의도적인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는 않을 것 같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도 28일 "위기상황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일부 언론 등 보수세력이 개혁정책을 무디게 하기 위해 위기론을 조장한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7년전 그 때처럼 연쇄부도도 없고 외환은 넘쳐 외국에서 투자처를 찾아야 할 상황이다. 더구나 개혁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경제위기론이 제기되어 왔기에 참여정부를 향한 흔들기도 나올 법하다.

유가급등, 중국쇼크, 미국 금리인상 조짐 등 해외 3재(災)는 부담스럽다. 400만명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 수출에만 의존한 고용 없는 성장, 과실만 따먹는 외국자본의 투기적 행태, 극심한 투자부진도 위협적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극도의 불신이 빚어낼 분열과 파국적 상황이다. 작금의 경제위기 논쟁이 바로 그렇다. KBS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90%이상이 위기라고 응답했다. 반면 최고정책 당국자들은 보수세력의 여론몰이에 결과라며 위기론을 일축했다. 그런데 양측이 말하는 위기의 정의가 다르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점에서 현 경제를 위기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반면 정부는 외환위기 때와 같은 상황이 아니란 점에서 위기가 아니라고 진단하고 있다. 위기란 단어만 같을 뿐 서로 다른 논리와 이유를 대고 있는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논쟁이 위기불감증을 키울까 걱정이다.

/김경철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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