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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남기고/국사학계의 거목 이기백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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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남기고/국사학계의 거목 이기백 선생 별세

입력
2004.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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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타계한 이기백 선생은 평생 사료에 입각한 철저한 고증, 그리고 민족주의 정신으로 한국사 연구의 초석을 다진 학자이다. 한눈 팔지 않고 40년 가까이 강단에 머물며 한국사 전반에 걸친 다양한 연구성과를 냈고, 수많은 후학을 길러냈으며, 역사학 대중화에도 앞장 선 국사학계의 거목이다.1924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이 선생은 종조부(從祖父)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세운 오산중학교를 41년에 졸업한 뒤, 와세다대 사학과로 유학했다. 하지만 재학 중 만주관동군으로 전쟁터에 끌려나갔고, 45년 광복 직후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한국인포로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에 입학, 1년 만에 졸업했다. 이화여대(58∼63년), 서강대(63∼85년), 한림대(85∼95년) 교수를 거쳐 99년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특히 20년 넘게 재직한 서강대에서 학문을 꽃피웠으며 이때 전해종(동양사), 길현모·차하순(서양사) 교수와 함께 '서강사학'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역사학자 이병도 선생의 제자로 광복 이후 한국사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로 평가받는 그는 국내 역사학계에 사료에 입각한 사실적인 연구태도를 뿌리내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실증사학'이라는 방법론 때문에 때로 일제의 식민사학을 계승했다는 비난도 샀지만, 그의 한국사 연구는 그 반대로 식민사관 극복을 중요한 목표의 하나로 삼았다. "한국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우선 과업은 식민주의 사관의 청산"이라고 당당히 밝혔으며, 어느 저서 할 것 없이 일관되게 한국사를 독립적이고 내적인 발전과정으로 해석했다.

역사학회와 진단학회 대표 간사를 맡았고 '신라정치사회사연구' '한국고대사론' '한국사학의 방향' '신라사상사연구' '한국고대정치사회사연구' 등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냈다. 대표 저서는 76년에 낸 '한국사 신론'(일조각 발행)이다.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던 61년 강의 교재용으로 '국사신론'을 썼다가 6년 뒤 고쳐 낸 '한국사 신론'은 체계를 갖춘 최초의 한국사 개설서로 평가 받는다.

76년, 90년 두 번 개정되고 99년 한자어를 풀어 쓴 한글판이 나와 100만 부 판매를 헤아리는 이 책은 초판 발행 당시는 물론 지금도 여전히 새롭게 읽히고 있다. 시대구분이 왕조 중심이나 서구식 고대―중세―근대 3분법이 아니라, '원시공동체 사회' '성읍국가와 연맹왕국' '전제왕권' 등 지배세력 변화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눈에 띈다.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한 올곧은 학자"로 고인을 기억하는 이종욱 서강대 교수는 '한국사신론'을 "한국인의 역사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라고 평가했다. 대중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87년부터 낸 반년간지 '한국사 시민강좌'(일조각)도 역사학 대중화에 애쓴 그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다. 병환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나온 34집까지 책임 편집을 맡는 등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생전 학문 업적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 학술원 저작상, 위암 장지연상, 용재학술상 등을 받았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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