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9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크로스오버 보컬리스트 사라 브라이트만 공연을 코 앞에 둔 공연기획사 액세스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걸려 오는 전화의 상당수가 '협찬사와 주최사가 어디냐'고 문의하는 내용"이라고 하소연한다. 초대권을 얻기 위해서다. "이번 공연에 초대권은 없다"고 말해도 선뜻 예매를 하기보다는 "좀 더 기다렸다 하겠다"며 전화를 끊는다.예매 추이도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 공연은 오케스트라 석에 자리한 60석 가까운 VIP석이 49만5,000원, R석이 16만5,000원으로 다른 공연에 비해 비싼데도 불구하고 R석은 진작 80%이상 예매가 된 상태. 하지만 10만원 안팎의 S, A, B석은 아직 절반 정도가 남아 있다. 기획사 관계자는 "돈 내고 제대로 된 자리에서 공연을 보겠다는 이들은 일찌감치 예매를 끝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대형공연의 경우, 공연에 임박해서도 자리가 차지 않으면 티켓과 광고를 맞바꾼 프로모션용 티켓을 대량 뿌리거나, 협찬사에 초대권을 대량 제공하거나, 혹은 할인행사를 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관객들은 공짜표를 목 놓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초대권 풍조를 만든 일등공신은 초대형 오페라. 공연불황으로 잇따르는 할인행사에 중독된 탓도 있다. 최근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한 무용공연은 예매율이 저조하자 당일 현매 관객에게는 티켓가의 30%를 할인해 줘, 제 값 주고 예매했던 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공연 기획사의 아이디어를 동원한 할인이벤트로 할인 경쟁이 가속화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최근 '아사오 사사키의 숲'(5월22일) '미술관 옆 동물원'(5월 29,30일) 등의 공연을 진행했던 공연기획사 쎌인터내셔널은 '아침형 인간 예매 혜택'이란 이름으로 월요일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예매자들에게 30% 할인이라는 파격적인 혜택을 줬다. 전체 관객의 무려 40%에 이른다.
저가경쟁은 턱없이 저렴한 티켓가격으로 이어진다. 지난달 13일부터 6일까지 대학로 질러홀에서 열리고 있는 여행스케치 공연의 티켓 가격은 2만원. 라이브 콘서트의 평균 티켓가가 5만원 안팎인 것과 비교해 볼 때 파격적으로 저렴하다. "10년 전 가격으로 책정했다. 대부분 공연이 매진이었는데 저렴한 가격이 큰 몫을 한 것 같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 10∼13일 양희은· 양희경 드라마 콘서트를 진행하는 좋은 콘서트도 오래 전부터 4인이상 예매시에는 10%, 10인 이상 단체 예매시에는 20% 할인 혜택을 주고 있다.
물론 적당한 할인 혜택은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공연장으로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한다. 싸고 좋은 공연만큼 관객들에게 고마운 것도 없다. 대중들의 좋은 공연에 대한 목마름은 EBS 스페이스의 예에서도 볼 수 있다. 지난 4월 문을 연 EBS 스페이스는 150여 석 남짓한 소극장이지만 아소토유니온, 정재일, 정원영, 양방언, 유키 구라모토 등 정상급 뮤지션의 공연을 무료로 열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 신청을 통해 관객을 초대하는 이 공연의 신청자는 매번 평균 1,500명. 유키 구라모토 공연의 경우 5,000명이나 신청했다.
저렴한 티켓가격으로 좋은 공연을 희망하는 관객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빈자리가 무서워 자꾸 초대권을 뿌리다 보면 관객들은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대형공연=초대권으로 보는 공연'이라는 생각을 반사적으로 떠올리게 될 지도 모른다. 결국 제 살 깎아 먹기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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