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들이 세대교체를 하고 있다. 불과 1년전만해도 알 카에다의 1인자 오사마 빈 라덴이 테러리스트의 대명사였으나 이제는 보다 젊은 세대들이 전 세계에서 테러의 막후 주범으로 파악되고 있다. 9·11 테러로 전 세계를 공포와 분노에 떨게 한 빈 라덴과 알 카에다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는 최근 빈발하는 테러 사건의 배후와 관련해 더 이상 직접적으로 거론되지 않는다. 이들은 이제 테러를 조종, 실행하는 세력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들의 상징적 존재로 위치가 바뀌고 있다.
최근 AP통신은 새로운 테러리스트 세대가 9·11 이후 본격적인 테러와의 전쟁으로 체포됐거나 추적을 피해 잠적한 선대 테러리스트들을 대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부 무삽 알 자르카위(38·요르단) 줄카르나엔(40대·인도네시아) 둘마틴(33·말레이시아) 아메르 아지지(36·모로코) 하비브 아크다스(터키) 나빌 사라위(30대·알제리) 압둘 모흐신 알 무크린(30·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바로 테러와의 전쟁에서 '지명수배' 명단 최상위에 오른 테러리스트들이다.
미국의 테러 전문가 에반 콜먼은 "이들은 21세기의 새로운 테러리스트"라며 "문자 그대로 빈 라덴 2세들이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모두 미국에 대한 깊은 반감을 바탕으로 미국의 동맹국들과 미국에 굽신거리는 이슬람 국가를 응징하고 이슬람국가를 창설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테러리스트가 자르카위다. 전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라크에서 알 카에다와 연계, 저항세력들의 공격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빈 라덴 대신 이슬람 테러조직을 이끌어갈 최고 거물급으로 부상하고 있다. 5월 초 이라크에서 미국인 니컬러스 버그를 참수한 장본인으로 추정되며 3월 시아파를 겨냥한 바그다드 및 카르발라 연쇄 자살폭탄테러, 지난 해 8월 바그다드 유엔본부 폭탄테러를 주도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이라크 외에서도 3월11일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폭탄테러 등 굵직한 테러 사건에도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자르카위는 2002년 미국 외교관 살해 사건으로 요르단에서 궐석재판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미국은 최근 그를 체포하기 위한 보상금을 1,000만 달러에서 2,500만 달러로 올렸다.
아지지는 198명의 목숨을 앗아간 마드리드의 열차 폭탄 테러를 주도한 것으로 추정되며 9·11 테러를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마드리드 테러를 준비하면서 자르카위와 모로코의 알 카에다 조직원들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또 알 카에다의 스페인 조직을 이끈 혐의로 지난 4월 스페인 당국에 기소됐으며 2001년 11월 투옥된 스페인의 알 카에다 조직 지도자 이마드 야카스의 오른팔이다.
줄카르나엔은 지난해 8월 알 카에다의 동남아지역 전위부대격인 제마 이슬라미야(JI)의 활동 책임자 함발리가 체포된 후 그 뒤를 이었다.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인도네시아 출신으로는 드물게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 훈련을 받았으며 본명은 아리스 수마르손이다.
JI의 또 다른 거물인 둘마틴은 전자공학 전공자로 별명은 '천재'. 지난 2002년 200여명이 희생된 발리 폭탄 테러를 기획한 인물로 추정되고 있으며 테러범이 되기 전엔 중고 자동차 중개상이었다.
아크다스는 지난해 11월 터키 이스탄불 유대교회당에서 59명이 희생된 폭탄테러 사건이 발생한 이후 주목 받기 시작했다. 2001년 아프간에서 빈 라덴을 만나 군사·폭발물 훈련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30대 중반 또는 후반의 '잔혹한 테러분자'로 악명이 높은 사라위는 과거 자신의 테러 보스를 직접 제거하고 전면에 나선 케이스다. 코란의 엄격한 해석을 중시하는 강경파인 살라피스트 선교·전투그룹(SGPC)의 조직원이었던 그는 보스를 축출한 뒤 빈 라덴의 알 카에다에 합류했다.
알 무크린은 알 카에다의 사우디 조직책으로 27일 이슬람 웹사이트에 게재한 성명을 통해 추종자들에게 암살 납치 폭파 등 도시 게릴라전을 수행할 것을 촉구한 인물이다.
아프간 테러학교에서 훈련을 받다 낙오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해 5월과 11월 사우디 리야드에서의 폭탄 테러에 연루된 혐의도 받고 있다.
AP통신은 젊고 혈기왕성한 데다 미국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를 갖고 있는 새 세대 테러리스트들이 한층 과격한 테러를 감행, 엄청난 희생을 부르는 테러의 새로운 기록을 남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제인스 테러리즘과 폭동 연구센터'의 편집장인 리처드 에반스는 "테러리스트들은 자르카위와 같은 젊은 세대 거물급들의 지속 시간이 짧다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며 "그들은 그저 선봉에 나서길 원하며 자르카위가 제거되더라도 제2, 제3의 자르카위는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이경기자 moonlight@hk.co.kr
■"유사 알 카에다" 발호/테러도 프랜차이즈화
테러가 터지면 으레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가 배후로 거론되지만 실제 알 카에다가 범행했다고 확인된 경우는 거의 없다. 테러의 특성상 일방적인 주장을 넘어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테러문제 전문가들은 그래서 알 카에다가 전 세계 테러를 주도하거나 사주하고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엔 알 카에다의 이념에 따르는 자생적 폭력조직들이 테러에 가세하고 있다는 두리뭉실한 해석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이 축출되고 테러 훈련캠프도 모두 폐쇄된 뒤 와해됐던 알 카에다가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동 등지에서 소규모로 나뉘어 조직 재건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최근 미국 언론에서는 배후가 불분명하지만 알 카에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이 같은 테러를 가르켜 '테러의 프랜차이즈'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알 카에다의 직접적인 지휘계통에 있지는 않지만 알 카에다의 명성을 등에 업고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조직이나 자생적 테러단체가 저지르는 유사한 테러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 같은 테러는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테러 이후 유럽에서 부쩍 위협이 되고 있다. 열차테러의 주범으로 알려진 '모로코 이슬람 전사단(GICM)'은 1993년 아프간 전쟁 참전자들이 주도한 테러단체로, 스페인에서만 이 같은 자생적 테러조직이 1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페인 당국은 이들 중 상당수는 이집트 시리아 파키스탄 등에 본거지를 두고 직간접적으로 알 카에다를 추종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2002년 2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도네시아 발리 테러를 저지른 '제마 이슬라미야(JI)'와 지난해 말 터키 이스탄불에서 연쇄자살폭탄 테러를 자행한 터키 내 무장단체 '위대한 동쪽의 이슬람전사 전선(IGERF)', 이란 접경지역 쿠르드족 자치지역에서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탈레반 수준으로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안사르 알 이슬람', 이집트 관광지인 룩소르에서 외국인에 대한 무차별 테러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이슬라믹 그룹(IG)', 필리핀 남부의 분리주의 테러단체 '아부 사예프(ASG)' 등은 진위가 확인되지는 않고 있지만 알 카에다와의 연계의혹이 거론되는 테러조직들이다.
두목인 함발리와 그의 후계자 줄카르나엔 등이 아프간에서 훈련받은 것으로 알려진 JI는 유엔으로부터 알 카에다와 같은 등급의 국제테러조직으로 지정돼 자산동결 등의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다. 이라크 저항세력도 성격이 비슷하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40여개에 달하는 전세계 테러집단 중 극단적인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조직은 20여개에 이른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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