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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밀양 위양리 양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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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밀양 위양리 양양제

입력
2004.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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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 모심기를 준비하는 농부에게 그해 쌀농사의 풍년을 미리 알려주는 나무가 있다. 물이 충분해야 꽃을 많이 피우는 이 나무는 하얀색 꽃이 이밥(쌀밥)을 닮아 쌀밥나무로 불리는 이팝나무다. 그 이름이 여름의 시작인 입하(立夏)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내리는 빗물을 모아 모심기를 하던 그때에는 쌀밥 꽃이 많이 달린 봄이면 풍년의 가을을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팝나무들이 흰 쌀밥 꽃을 못물에 드리우며 저수지를 지키고 있다해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에 있는 양양제(陽良堤)를 찾았다. 옛날에는 큰 못의 둑을 제(堤)라 하였고 많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수리시설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무들이 거의 다 사라졌다. 위양리의 넓은 들판 끝자락에서 58번 도로는, 앞을 가로막은 숲 언덕을 피해 오른쪽 비탈을 따라 마을로 넘어간다.

양양제가 만들어진 때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름으로 미루어 신라시대로 추측된다. 여러 개의 촌락으로 이루어진 신라시대의 독립된 행정단위를 부곡(部曲)이라 하였는데, 동국여지승람을 인용한 밀주구지(密州舊志)에는 위양리의 원래 이름이 양양부곡(陽良部曲)이라고 기록돼있다.

이 제방은 임진왜란(1592)때 무너진 것을 1634년에 보수했는데 저수지에는 나무들이 심겨진 다섯 개의 섬이 있다. 그 중 하나에는 정자가 있는데 임진왜란 이전에 마을에 이주한 안동 권씨의 완재정(宛在亭)이다. 완재정에 걸려있는 완재정기(宛在亭記)에는 '완재정의 못은 양야지(陽也池) 또는 양양제로 불렸으며, 신라와 고려시대를 통해 못물을 들판에 대어 농사를 지은 '백성을 살리는 이로운 못(生民利澤之源)'이라 하였고, 사방의 제방에 아름다운 나무(佳木)와 신기한 꽃(奇花)을 심어 은자들이 소요하는 곳 이었다'고 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양양제는 농사를 위한 저수지인 동시에 아름다운 숲이 들어선 명소였음을 알 수 있다. 원래 둘레가 4.5리(약1.8㎞) 정도였다고 하나 지금은 약 1㎞ 정도이다. 100여m 길이의 둑에는 산책로를 따라 지름 50㎝가 넘는 소나무들과 1m에 이르는 느티나무, 그리고 크고 작은 참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대나무와 밤나무들이 어울러져 있다. 또 사이사이에 하얀 쌀밥나무 꽃들이 활짝 피어 있다. 둑 없이 농경지와 붙어있는 마을쪽 가장자리에는 지름 1-2m 정도의 왕버들과 긴잎떡버들이 줄을 지어 못을 감싸듯 기울어져 있다.

이팝나무들이 흰 꽃을 자랑하고 있는 섬들을 기웃거리다가 소나무와 밤나무를 심고 풍류를 즐기면서 농사철에는 물을 사용하던 선조들의 생활화된 마을숲 가꾸기와 이용을 생각해 보았다. 또 벼락으로 검게 탄 아름드리 느티나무 둥치는 '죽은 나무도 자연'이라고 했던 한 독일 철학자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양양제의 미래는 시의 문화자료로 지정된 제방과 숲, 안동 권씨의 다섯섬, 그리고 농지개량조합 관리의 못 물로 3등분 되어있다. 숲과 제방, 그리고 섬들의 미래가 무조건적인 보호나 무책임한 이용보다는 '생활속의 아름다운 마을숲'으로 남기를 바란다. 나무는 자라고 죽는 생물이며 물은 흐르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잊어버릴 때가 많다.

/권진오

국립산림과학원 박사

alp96jk@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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