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6월2일 시인 김지하가 세칭 '오적' 사건으로 구속됐다. '사상계' 1970년 5월호에 김지하가 발표한 '오적'은 '담시(譚詩)'라는 독특한 장르 안에 민중 문학 고유의 해학과 풍자 전통을 녹여내면서 당대의 부패한 사회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오적'이 당초 '사상계'에 발표됐을 때 이를 묵인하는 듯했던 박정희 정권은 이 작품이 당시 야당 신민당의 기관지 '민주전선' 제40호(1970년 6월1일자)에 전재되자마자 반공법 위반 혐의를 걸었다. '오적' 사건은 '사상계' 폐간의 한 원인이 됐고, 작자 김지하는 이 사건을 시발로 감옥을 오가며 1970년대 전기간을 박정희와 맞버티며 살았다. 시인은 현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나, 그에 대한 박해가 전세계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면서 김지하는 박정희의 최대 정적 가운데 한 사람으로 떠올랐다.'오적'의 다섯 도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다. 시인은 이 다섯 도적을 모두 개사슴록변이 들어가는 한자로 표현해 이들이 사람의 탈을 쓴 짐승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어느 날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도둑시합'을 벌이는 광경을 통렬한 풍자로 묘사한다. 포도대장으로 비유된 사직당국은 이들을 고발한 민초 '꾀수'를 도리어 무고죄로 가두고 오적의 도둑촌을 지키는 주구로 살아간다. 작품은 포도대장이 기지개를 켜다가 벼락을 맞아 죽고 이와 동시에 다섯 도적도 피를 토하고 죽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도둑시합에서 국회의원이 보인 '재조' 한 대목.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 들고 대갈일성, 쪽 째진 배암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혁명이닷, 구악은 신악으로! 개조(改造)닷,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중농(重農)이닷, 빈농은 이농(離農)으로! 건설이닷, 모든 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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