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불황을 이어가면서 직장을 구하지 못한 대학 졸업자들의 시름이 깊어 가고 있다. 이들에게 각종 취업 사이트와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자기계발을 하라" "국제화에 맞도록 실력을 쌓아라" "적극적으로 당신을 알려라". 좋은 말씀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한결같이 구직자들의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을 고용하는 직장은 이미 국제화가 돼 있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투다. 과연 그럴까.
직장을 구할 때 반드시 필요한 이력서를 보자. 우리나라 기업에 이력서를 제출하는 것은 구직자에게 고통이다. 회사마다 서로 다른 양식의 이력서 제출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원하는 회사의 숫자가 한두 개가 아닌 수십 개 이상에 이르기 때문에 이 노력이 보통이 아닌 것이다.
미국의 경우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력서 작성은 하나로 족했고 겉에 덧붙이는 편지(cover letter)만 회사마다 약간 다르게 하여 보냈었다. 그래서 구직자들은 형식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을 알리는 내용을 충실하게 만드는 데 전력할 수 있다.
이력서뿐만 아니다. 각종 공문, 제안서, 보고서 등 우리나라의 문서에는 표가 많다. 이력서에서 학력, 경력 등 모두 사전에 정해진 표에 집어넣을 것을 요구한다. 외국의 문서를 보면 표는 별로 찾아볼 수 없고 텍스트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문서가 사전에 정의된 형식(pre―form)이라면 외국 문서는 자유 형식(free―form)이다.
전자가 언뜻 보기에 일목요연하여 장점이 있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표에 해당 내용이 없어 공란으로 두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양을 기준으로 보면 별 것 아니다. 이런 문서에는 창조성이 들어갈 여지가 별로 없다. 문서 작성이 소위 칸 채우기로 전락하게 된다. 나만의 독특한 문서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 버린다. 이제 모든 산업에서 외국과의 교류가 많아진 시점에 이런 문서 작성에 익숙해서는 곤란하다. 직장의 상급자가 긴 글을 읽고 의미를 알아내는 노력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문서에 표와 형식이 많아졌다.
구직자에게만 경쟁력을 키울 것을 강요하는 것은 잔인하다. 이제 기업이야말로 국제화돼야 한다. 구직자들에게 창조적으로 자기 소개를 할 수 있도록 기존의 관행을 타파하는 기업들이 많아지기 바란다.
/이복주 단국대 전기전자컴퓨터 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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