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을 둘러싼 논란이 어지럽다. 휴전선 미군과 용산기지의 한강이남 이동 문제로 시끄럽더니, 미군 1개 여단의 이라크 차출이 우리 군 추가파병과 맞물려 국민을 혼란스럽게 했다. 앞의 문제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한 마디로 진정됐으나, 뒤의 문제는 우리끼리 탓하며 다투는 양상이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한미연합사 참모장이 한미연합군도 동북아 평화유지활동에 동원될 수 있다고 말해 혼란을 부추겼다. 곧 이어 주한미군 1만2,000명 감축이 예고되면서 혼란은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미국이 던지는 화두를 놓고 우리끼리 멱살잡이 하다가 급류에 빠져 허둥대는 듯한 현상은 우선 두 나라 정부가 안보에 유난히 민감한 한국민을 제대로 배려하지 않은 때문이다. 바로 그 안보 과민증 때문에 드러내놓고 논의할 수 없었다고 하겠지만, 국민을 이토록 혼란스럽게 해서는 논의를 올바로 이끌어 주한미군과 동맹의 장래를 옳게 설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혼란의 근본은 우리사회가 동맹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 있다. 무슨 삐딱한 얘기냐고 할 지 모르나, 무릇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우리의 생존과 평화에 영구불변의 가치를 지닌 것처럼 믿는 것부터 옳지 않다. 미국이 못마땅해 동맹도 해소해야 한다고 떠드는 것이 위험하다면, 그 것을 건드려선 안될 숭고한 성역으로 여기는 것 또한 어리석고 무지하다.
동맹의 역사는 그 것이 항구적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증언한다. 중국 전국시대 동맹의 고전 합종연횡도 평화를 위한 원대한 국가전략이기보다, 적대적 동맹으로 생존을 모색한 임시방편적 외교술책이었다. 가까이는 1·2차 세계대전 전의 동맹이 인류사상 최악의 전쟁으로 귀결됐고, 냉전시대 동서 동맹도 인류를 반으로 가른 적대를 장기화하는 데 이바지했을 뿐이다.
한미동맹을 합종연횡에 비유할 생각은 없다. 다만 모든 동맹은 국익이 교차하는 곳에서 한때 접점을 이루는 것일 뿐, 영원히 함께 가는 동반자 관계는 아니라는 점을 일깨우려는 것이다. 동맹은 흔히 안보에 도움되지만, 때로 안보를 위협할 수도 있다. 찰스 캠벨 한미연합사 참모장의 발언은 바로 이 점을 깨우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의 전문가들은 주한미군의 전략기동군화와 한미연합군의 동북아 분쟁개입이 주변국 관계에 문제를 야기한다고 에둘러 말한다. 그러나 미국의 주한미군 철군론자들은 이를 일찍부터 분명하게 지적한다. 동북아에서 미국이 가상하는 분쟁은 대만 문제를 비롯한 중국과의 갈등이 우선적이며, 이때 한국은 주한미군 때문에 중국의 공격표적이 될 것을 우려해 미국 편에 서기를 회피할 것으로 본다. 따라서 확고한 전략적 동반자인 일본과 동남아에 힘을 집결하는 대신, 한국에서는 철수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된다는 논리다.
우리에겐 생소한 이런 논리는 한국이 북한을 국력과 군사적 잠재력에서 압도한다고 본다. 따라서 반미감정 등의 부담을 감당할 것 없이, 한국에 안보를 맡기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자체 방어능력이 없는 북한이 오히려 미군주둔을 바라고있고, 미국이 여기에 부응하는 기묘한 상황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미국이 이런 주변적 논리를 그저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 보수진영도 주한미군이 북한 억지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고, 변화에 맞춰 새로운 주둔 명분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안보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 없이 습관적 안보불안 때문에 미국을 뒤좇다 보면, 수십 년 지연된 변화조차 미국의 전략적 틀에 이끌리는 줄 모른 채 혼자 안도하는 꼴이 될 수 있다. 한미연합군이 인도주의적 개입과 평화유지에 동참할 수 있다고 알듯 모를 듯 운을 뗀 의도가 북한 붕괴시 개입권을 미리 확보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황당한 추리로 여길게 아니라,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잘 헤아려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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