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로 받은 LP판을 듣기 위해 돈을 모아 턴테이블을 장만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 오래 전의 일은 아니다. 말하자면 소프트웨어를 즐기기 위해 하드웨어를 큰맘 먹고 장만하던 시절이었다.그러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새로운 하드웨어들이 발명되고 보급되는 요즘엔 이야기가 달라졌다. 하드웨어의 성능을 즐기기 위해 소프트웨어가 '필요'해진 것이다.
새로 장만한 디지털TV의 선명한 화질을 즐기기 위해 DVD플레이어가 필요하고, DVD플레이어가 있기 때문에 DVD를 구입한다. 모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발명'한, 블로그의 일종인 '미니홈피'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정작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단다. 디지털 카메라, 카메라폰, 웹캠 관련업체가 그 주인공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말한 사람은 에디슨이었다. 하지만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가 아니라,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다. 모자관계가 뒤바뀐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텅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사진을 올려야 한다. 따라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해진다. 디지털 카메라가 필요하고, 카메라폰이 필요하고, 웹캠이 필요하다.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면 그 사진을 예쁘장하게 다듬을 수 있는 포토샵이 필요해진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는 그 다음 문제다. 찍어야만 하는 대상이 있어서 디지털 카메라 카메라폰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수중에 있기 때문에 뭔가를 찍는 것이다. 이쯤되면 '필요를 발명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경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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