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에 대하여글 김열규 등·사진 김병훈
눈빛 발행·1만원
지난 세월을 추억하는 동안 사람들은 종종 삶의 진실을 마주한다. 모든 것을 무(無)로 끌고 가는 시간의 위력을 절감하면서도, 순간에 지나지 않는 과거의 한때, 그 삶의 진정성이 사무치도록 그리울 때가 있다. 회한이나 무력한 향수가 아니라면 그것이 소중하지 않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사진 에세이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는 잊혀져가는 사소하거나, 사소하지 않은 옛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진작가 김병훈씨의 흑백 사진과 각각 필자가 다른 8편의 글이 실렸다. '비 혹은 물' '휴(休)' '흙' '세월' 등이 시간과 사람살이 일반에 대한 반성이라면, '구멍가게' '이발소와 이발소 그림' '집' '불량식품'은 추억해봄직한 구체적인 일상에 대한 생각이다.
소설가이면서 환경운동에 열심인 최성각씨는 '비 혹은 물에 관한 이야기'에서 틱낫한 스님의 우화를 인용해 물 또는 자연 순환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만일 당신이 시인이라면 당신은 이 한 장의 종이 안에서 구름이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무슨 뜻일까? '구름이 없으면 비가 내릴 수 없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나무가 자랄 수 없고, 나무가 없으면 종이를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다.
최씨는 나아가 '조금 더 종이를 들여다보면, 거기에서 숲을 키우는 눈부신 햇살도 느낄 수 있고, 나무꾼의 땀도 느낄 수 있고, 도끼를 들고 숲에 들어가기 전에 나무꾼이 어린 딸과 먹던 밥그릇도 보이고, 어린 딸이 한쪽 손에 든 숟가락에 묻은 밥알도 보이고, 그 밥그릇을 채우게 한 농부의 들판도 떠오른다'고 한다. 이쯤 되면 펼쳐 보던 책장에서 풀 냄새가 나고 숲의 벌레 소리가 들릴 법도 하다. 누군가는 폐지를 모으는 고물수집상의 땀방울이 보인다 할지도.
문화주간지 기자인 이현주씨가 쉼 또는 그침에 대해 생각한 '휴'는 짧은 글이지만 많은 생각이 담겼다. 글 읽는 맛도 좋다. 쉬는 것은 마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자체로 깨달음이라는 화두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화여대 건축과 임석재 교수가 쓴 '사람살이를 담는 집'은 마당과 꽃밭과 다락이 있는 집이 사라져가는 데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추억은 자연스레 '아파트 공화국'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단층은 5층으로, 5층은 다시 15층으로 높아져갔다. 그리고 15층은 어느새 성큼 30층으로 둔갑했다. 사람들은 집에서 돈이 나온다며 눈이 벌개져 돌아다녔다. 능선이고 구릉이고 앞뒷산 같은 건 뭉개버리면 그만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 왔고 지금도 이렇게 살고 있다. 5층에서 15층으로, 15층에서 30층으로, 그 다음에는 또 무엇이 기다릴까.'
미술평론가 박영택씨는 이발소 그림을 조잡하기 그지없지만 어린 시절 미감을 일깨운 단초로 소중하게 기억했다. 이동연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장이 번데기와 달고나, 쫀드기를 '삶의 정서의 흔적'으로 추억할 때 불량식품은 사회적 '수감' 상태를 벗어난다. 무엇보다 이 글들에 세월의 아련함을 더해주는 것은 사진작가 김병훈의 흑백사진이다.
'디카'의 보급으로 사진이 르네상스기를 맞으면서 사진 에세이집의 출간도 늘었다. 하지만 이만큼 삶을 진지하고 근사하게 곱씹어보게 하는 책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월간 '지오(GEO)'에 2002년부터 2년 동안 실렸던 글을 모아 낸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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