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써루의 유라시아 횡단 기행폴 써루 지음·이민아 옮김
궁리 발행·1만6,000원
기행작가로 이름난 미국인 폴 써루가 기차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뒤 쓴 여행기이다. 1975년에 나온 책이어서 시대 상황이 지금과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제법 읽는 재미가 있다. 30년이 지났어도 철길을 따라 기차여행으로 보고 듣는 여러 나라의 모습은 흥미롭다.
70년대 초 어느해 9월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역을 떠난 저자는 파리, 이탈리아, 불가리아, 터키, 파키스탄, 인도, 스리랑카, 버마, 타이, 말레이시아, 베트남을 거쳐 일본에 도착한 뒤 배를 타고 러시아 나호트카로 가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써루의 첫 여행기인 이 책은 여행에서 만난 사람, 지역의 인상 위주이지만 각 나라의 문화와 사회 풍경이 생생하다. 감상에 치우치지 않고 자잘한 일화를 앞세워 읽는 맛을 준다.
인도에서 실론으로 가는 열차에서 만난 미국인 탁발승 이야기도 그렇다. 자신을 "열반에 이르는 삼등열차의 분기선에 서 있노라"고 그럴 듯하게 말하며 물을 찾는 그에게 써루는 "왜 승려가 되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승려는 물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런 질문 하루에도 수백 번씩 받는단 말이오! 답은 없소. 물을 찾고 있을 뿐이오." 이쯤 되자 써루도 골려주고 싶었는지 답해주면 물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돌아온 대답은 "이거 되게 성가신 개자식이군. 나머지 것들과 다를 바 없어"였다. 베트남의 싸구려 건물을 보고 "제국주의라 할지라도 도시 계획과 유지 보수 사업에서만큼은 제 역량을 보여주는 법"인데 미국은 그런 의지조차 없다고 개탄할 때는 사회비판의식도 뚜렷하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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