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이름은 윤이에요레코비츠 글·스위앗코스카 그림. 박혜수 옮김. 배동바지.
● 내 이름이 담긴 병
최양숙 글·그림. 이명희 옮김. 마루벌.
별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내 이름은 '강은슬'이다. 늦은 나이에 본 둘째 딸에게 예쁘고 독특한 이름을 지어주려고 아버지가 석달이나 옥편을 뒤져 찾아낸 것이 큰 거문고 '슬(瑟)'자다. 그런데 내게는 섭섭이 손녀가 반드시 남동생을 보라는 염원에서 할머니가 붙여준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양극점에 놓인 두 이름 사이에서 나를 세우는 지점은 어디일까.
이름은 한 인간의 정체성의 기초가 된다. 그런데 타 문화권으로 이식되면 문화를 나타내는 기호도 된다. 우리끼리는 한 눈에 뜻과 그 이름에 담긴 부모의 희망을 알 수 있는 윤, 은혜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문화가 전혀 다른 나라에 산다면 그 아이는 어떻게 자기를 인식하고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까? 윤과 은혜는 미국으로 이민 간 아이들로 낯선 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 "내 이름은 윤이에요"의 윤은 'YOON'이라고 쓰는 것이 싫다. '빛나는 지혜'라는 뜻이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하거니와 '윤'이라고 썼을 때처럼 글자들이 함께 모여 있지 않고 동그라미와 선들이 따로따로 서 있는 것이 꼭 새로운 세계에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자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윤은 이름을 영어로 쓰는 연습을 하라는 선생님의 말에도 불구하고 CAT이라고 쓰며 고양이가 되어 구석에 숨고 싶어 하거나 BIRD라고 쓰고는 새가 되어 한국으로 날아가는 꿈을 꾼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컵케이크를 주며 웃는다. 윤은 컵케이크 속에 얼굴을 내놓은 채 들어가 교실 천장에 둥실 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제 윤은 처음으로 미국 애와 개별적으로 만났고 적응에 한 발 내딛는다.
초현실적인 그림은 윤의 심리를 잘 나타낸다. 가구도 거의 없고 텅 빈 벽에 체크무늬 바닥만 강조한 윤의 집 내부와 창 너머 멀리 보이는 풍성하고 조화로운 풍경의 대조는 겉도는 윤의 내면을 잘 표현하고, 윤의 표정 또한 그의 슬프고 혼란스럽고 즐겁고 마침내 자신감을 가지는 감정 변화에 따라 다채롭다.
'이름이 담긴 병' 역시 낯선 곳에서 적응해나가는 모습을 '은혜의 이름 정하기'에 겹쳐 그려나간다. 그 과정에서 자기가 새로운 세계에 받아들여질까 걱정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다가갈 때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은혜라는 이름의 발음을 가르쳐주고 영어 이름에도 뜻이 있다는 것을 책의 말미에서 보여준다.
이 책들은 윤이나 은혜를 한글이나 한자로 쓰는 것과 알파벳으로 쓰는 것은 표현만 다를 뿐, 뜻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통해 다른 문화에 노출된 아이들의 정체성이 양 문화 사이의 어디쯤에서 자리잡아야 할지 제시한다. 그래서 그림책이지만 초등학생 이상에게 적합하다.
강은슬/대구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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