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연세대 특강에서 정(政)·경(經), 권(權)·언(言) 의 유착을 '조폭'에 비유하며 이들의 '특권 문화'를 바꾸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드러냈다. 노 대통령의 이날 강연에는 직무가 정지된 63일 동안 관저에서 칩거하며 다져온 국정운영 구상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발언들은 국회 탄핵 의결 이전을 방불케 하는 직설적인 화법이 많았다.조폭적 특권문화
노 대통령은 "조폭문화는 자기들끼리 칼 같이 법을 세워놓고 외부 세계에는 전혀 법을 존중하지 않는다"며 "무조건 비열한 수단 동원해 공격하고 전혀 룰(법칙)을 인정하지 않고 그 사이에서 철저한 충성과 보상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이 개혁의 대상으로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을 재차 지목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강연 후 "'특권적 조폭문화'가 아니라 '조폭적 특권문화'의 청산을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특정 신문이나 정당을 지칭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이 문화가 지난날 우리 정치였고 잔재가 남아 있다"며 "권언유착은 끊긴 것 같지만 정언유착, 정경유착은 청산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특히 "정부 안 권력기관에도 정언유착의 사고 잔재가 남아 있는 부분이 없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진보와 보수의 정의
노 대통령은 "한국에서는 '뻑'하면 진보는 좌파고 좌파는 빨갱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사회 진보를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놈의 보수 다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며 "한국처럼 아주 오른쪽에 있는 나라는 바꾸지 말자는 기득권 향수가 강할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크게 봐서 보수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에게 가깝고, 진보는 더불어 살자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노벨상 수상자도 성장과 분배는 같이 가야 장기적으로 성공한다고 했다"며 "경제위기론에 동의하지 않고 내가 있는 동안은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열국지의 리더십
노 대통령은 리더십과 관련 "열국지 시대의 리더 자질을 갖고 와 하라는 데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열국지에 설득 잘 하고, 말 잘하고, 선동능력도 있어야 한다고 나오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것 없어도 한다"고 답했다. 열국지는 고건 전 국무총리가 이달 초 자신의 애독서라고 공개한 적이 있다. 따라서 이 언급은 고 전 총리를 간접적으로 겨냥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청와대측은 "노 대통령이 3,4개월 전부터 했던 말"이라고 연관성을 부인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리더십 덕목으로 "정치의 최고의 단수는 정직과 투명한 것", "여럿이 낭패보지 않을 판단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칠기삼
노 대통령은 또 자신이 대통령이 된 이유에 대해 "사주가 제법 괜찮고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한다"며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 상징적으로 비슷하게 보여서 그러니 '너 대통령 한번 해라'고 시켜준 것 아닌가"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점 치고 될 거란 확신 가졌다"고도 소개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한나라-우리당 반응
한나라당은 27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세대 특강에 대해 "말이 씨앗이 돼 탄핵소추를 당했다가 돌아온 대통령이 여전히 말을 함부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각론에서도 "노 대통령이 여전히 이분법적 사고로 편가르기를 하고 있으며, 아전인수로 상생을 해석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홍준표 의원은 "한나라당이 생각하는 상생과 노 대통령이 생각하는 상생이 다른 것 같다"며 " '김혁규 총리'를 다수당의 오기정치로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힐난했다. 남경필 의원은 "보수와 독재를 구별하지 못하는 등 잘못된 시각으로 점철돼 있고, 그런 시각으로 보수와 야당을 대했던 결과가 그 동안의 파행"이라며 "직무정지 기간 동안 숙고했다는데 별 변화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고 말했다.
심재철 의원은 "정언유착의 핵심은 권력과 방송의 유착"이라며 "일부 신문을 겨냥해 정언유착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헌법재판소마저 노 대통령에게 헌법을 잘 지키고 자중할 것을 권고했는데 다시 경거망동하고 있다"며 "노 대통령이 자기는 선이고 너희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그는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이 확실한 투자 운운한 것은 '도 아니면 모' 식의 사고 방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자백한 것"이라며 "국가적인 걱정"이라고 혀를 찼다.
이방호 의원은 "대통령은 통합과 법치, 준법의 상징인데 이념 문제를 직접 건드리고 그 중심에 서면 안 된다"며 "이념적 편가르기로 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위험한 발언을 잇달아 쏟아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큰 맥락에는 문제가 없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도 "너무 격한 표현으로 또 한 번 설화(舌禍)를 겪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박찬석 당선자는 "온고지신이란 말처럼 지키는 것이 있어야 새로운 것도 만들어 가는 것 아니냐"며 "진보는 좋고 보수는 나쁘다는 식으로 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비례대표 당선자는 "한국 사회에 '조폭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는 진단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평소 대통령의 표현이 강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좀 정제했다면 나았을 것"이라며 아쉬워 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전직대통령 비판 신랄 "별로 존경할 사람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연세대 특강에서 전직 대통령들에 대해 "목숨을 건 사람들"이라고 평가한 뒤 군 출신 전직 대통령들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성공 비결'을 말하면서 "승부를 걸 때 투자를 하려면 확실히 해야 한다. 제 인생을 걸어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제 앞에 대통령이 되신 분들은 다 죽다 살아난, 목숨을 걸었던 분들"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이 그렇죠. 박정희 대통령도 결코 찬성할 수는 없지만 한강을 건널 때 목숨을 걸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거론하며 "어떻든 쿠데타는 실패하면 죽는다"고 말했다. 그는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다들 돌아가실 뻔했다"며 "(나는) 다행히 목숨을 걸지 않은 첫 대통령이 됐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도자는 말할 자격을 가져야 한다"며 "한국적 민주주의란 이름을 붙여 민주주의를 말살시켜 놓으니 후유증이 엄청났다"고 박 전대통령을 겨냥했다. 그는 "1980년 전 대통령이 내건 게 정의로운 사회였으며 절대 보통 사람일 수 없는 분이 보통사람이라고..."라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난했다. 노 대통령은 "한국에는 극적 상황이 없다 보니 별로 존경할 사람이 없다. 중간에 돌아가셨으면 뜰 수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노출 줄이기 전략 盧 갑갑증 느꼈나/참모진 특강만류 뿌리쳐
노무현 대통령의 연세대 특강이 성사되기까지는 참모진의 만류 등 적잖은 곡절이 있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이날 "세상 사람들이 (저간의) 사정을 모르면 '대통령이 말을 아껴야 하는데 또?''무슨 소리 하려고'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끝나면 무슨 소리 나올지 모르니 의전비서관실에서도 신경을 쓰고, 경호실에서도 '혹시 봉변 당하지 않나' 걱정도 한다"고 소개했다.
노 대통령은 "여러분이 꾀를 내 나를 초청한 게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탄핵 기간 중 '리더십 이론' 과목을 듣는 학생 수백여명이 일일이 편지를 보내 특강을 요청한 것을 말한 것이다. 그는 "내 아들, 며느리가 다 연대 출신이다. 아마 그것도 결심하는데 약간…"이라며 웃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집권2기 청와대의 '대통령 노출 줄이기' 홍보전략으로 인해 열린우리당 당선자 워크숍 특강도 무산되는 등 갑갑증을 느낀 노 대통령이 이번 일정만은 고집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고주희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