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지 보세요.얼마 전 사무실 창가에 놓인 화분에 봉숭아 씨를 심었습니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어느 새 키가 한 뼘이나 자라 있는 거 있죠. 가끔씩 물을 뿌렸을 뿐인데 참으로 신기합니다. 요즘 저는 봉숭아 꽃 커가는 모습 보며 마음 다스리곤 합니다.
회사 선배가 "아무래도 봉숭아 몇 개는 솎아줘야 할 것 같다"고 하는군요.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서 그런 것도 몰랐네요. 그러고 보면 식물이 자라는 것도 사람이 자라는 것과 똑같은 것 같습니다. 매일 돌봐야 하고 화분을 갈아 주거나 잎사귀를 떼어줘야 하니까요. 이것이 바로 마음 졸이며 자식 농사 짓는 부모님 심정이 아닐까요.
아버지, 얼마 전 제 생일 때였습니다. 제 손으로 직접 미역국을 끓여 먹고 출근을 하니 쓸쓸했습니다. 그리고 1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전화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했더니 처음에는 "무슨 날이지, 몰라?"하더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섭섭하지가 않았습니다. 당신은 조금 후에야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네 엄마가 계시지 않으니 네 생일조차 몰랐구나. 미안하다 막내야. 그렇지 않아도 네 생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단다. 아빠가 깜박했구나. 미안하다."
아버지, 아닙니다. 저를 낳아 주신것 만으로도 감사한걸요. 지금 이렇게 글을 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제가 막상 혼자 떨어져 있어보니 아버지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실감합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참 많이 늙으셨어요. 머리카락이 하얗게 됐고 이마의 주름도 많아졌군요.
어머니를 잊지 못하는 저에게 언젠가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이제는 엄마를 맘 편히 보내줘야 한다. 그래야 엄마도 편하게 저 세상에 지낼 게다." 아버지, 저희들한테만 그런 말씀 하지 말고 아버지도 그래 보세요. 제가 아버지에게 전화로 "어디 아픈데 없으세요?"라고 물으면 당신은 으레 "아빠는 건강하고 잘 있다"고 대답하시잖아요. 그러지 말고 아픈 곳이 있으면 솔직히 말씀 해주세요. 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아버지랍니다.
여름이 곧 시작된다고 하네요. 여름옷은 좀 꺼내 놓으셨는지 모르겠군요. 아빠. 날씨 더 화창해지면 엄마가 계신 곳을 한번 찾아봐 주세요. 그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말씀도 하고 보고 싶다는 얘기도 해보세요. 저도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겠습니다. 오월에 막내 영 올림.
/mean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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