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었다. 허술한 관리로 1조원대의 국민세금만 탕진하게 됐다." 공적자금 2차 특별감사를 담당한 감사원 관계자는 결과를 발표하며 이렇게 털어놓았다.공적자금 관리기관과 일부 부실 금융기관은 국민세금을 자기 잇속 챙기는 데 사용하는 도덕적 해이의 극치를 보여줬다. 또 부실채권 매각에 급급해 관련 규정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거나 조사를 부실하게 해 쓰지 않아도 될 공적자금이 허비된 것도 수 천억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안이 징계시효가 지나 처벌과 돈 회수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자기 배만 불린 관리기관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는 공적자금으로 조성된 부실채권정리기금 관리자다. KAMCO는 이 지위를 이용해 2000년 10월 부실채권정리기금으로 부실채권 5조1,723억원 어치를 2,332억원에 매입한 뒤, 이를 다른 외국계 펀드 등에 팔지 않고 KAMCO 일반회계자금으로 863억원에 매입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공적자금 1,469억원만 사라졌다. KAMCO는 이렇게 매입한 부실채권 5조1,723억원 가운데 3,975억원 어치를 3,997억원에 팔아 매입원가 863억원에 비교할 때 3,134억원이나 이득을 챙겼다. 남은 4조7,748억원 어치의 채권을 매각할 경우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문제는 KAMCO가 이렇게 얻은 수익으로 공사직원의 임금을 평균 75.1% 인상하는 등 자기들끼리 흥청망청 돈잔치를 벌였다는 점. 특히 전무급의 경우 4년 동안 매해 연봉 1억9,000만원의 절반을 성과급으로 받기도 했다.
부실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공적자금 37조7,000억원이 투입된 우리은행 서울보증보험 등 8개 금융기관도 돈을 헤프게 쓰기는 마찬가지였다. 경영부실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1조479억원의 순손실이 발생한 서울보증보험은 같은 기간 직원 평균 인건비를 31% 인상했다. 특히 임원의 경우 평균 연봉 7,300만원에서 1억7,200만원으로 135% 인상하기도 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2000년부터 3년간 업무추진비 한도액보다 172억원을 더 썼고 임원 보수는 61%, 직원 보수는 40%를 올렸다.
이들 금융기관은 또 임직원 주택구입자금 2,946억원을 무이자 또는 연리 1∼5.5%로 융자해주는 등 임직원 복리후생비 2,320억원을 낭비해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
외국 투자사만 봉 잡기도
공적자금 관리기관들은 허술한 계약 등으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기도 했다. 특히 외국 투자사들은 이를 이용해 막대한 이득을 챙기기도 했다. KAMCO는 99년 5월 부실채권 99억원을 단돈 100원에 미국투자회사 M사에 팔았다. 대한주택보증이 지급보증을 했기 때문에 전액 회수가 가능했지만 KAMCO는 이 사실을 몰랐던 것, 결국 M사는 2000년 9월 100원짜리 채권을 89억원에 되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KAMCO는 또 부실채권을 조기 매각하기 위해서는 조세감면 혜택이 있는 자산유동화회사(SPC)를 설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2000년 2월 미국계 투자사 L사 등과 함께 기업구조조정회사(CRC) 2개를 설립했다. 결국 세금 170억원이 소요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SPC를 다시 세우는 바람에 관리 수수료를 이중지급해 474억원을 허비했다. 또 자산관리 수수료도 과다 지급했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없어진 CRC에 앞으로도 수수료 63억원을 더 지급해야 한다.
책임은 누가 지나
KAMCO와 예금보험공사는 또 공적자금이 투입된 부실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고도 아직 갚지 않은 채무관계자들의 숨겨진 재산을 찾는 일도 소홀히 했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에서 행정자치부의 종합토지세 과세자료 등을 이용해 이들의 은닉재산 1,108억원을 찾아냈다.
그러나 당시 잘못을 저지른 관리기관 책임자와 관계자들은 징계시효 3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대부분 징계를 받지 않았다. 감사원 관계자는 "공적자금관리특별법 상 감사를 2년에 한 번 실시하게 돼 있어 지나간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 자산관리公 등 부실 왜?
감사원의 특감을 통해 공적자금의 방만한 운용과 허술한 관리실태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외환위기 직후엔 '급한 불'을 끄다 보니 당장 돈(공적 자금)부터 끌어 모으는 게 급선무였고 운용상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는 불가피했다. 하지만 한국경제가 환란을 벗어나 안정을 되찾은 이후에도 여전히 공적자금의 사후관리가 허점과 부실 투성이였다는 점에서 이번 감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2001년 4월부터 지난해 6월 사이에 집행된 공적자금을 대상으로 한 이번 특감에서 가장 많은 지적을 받은 피감기관은 공적자금 양대 집행기관인 자산관리공사(KAMCO)와 예금보험공사. 감사 결과 부실채권정리기금(KAMCO) 예금보험기금(예보) 등 두 기관이 운영해온 공적자금 관련 기금은 한마디로 총체적 부실 그 자체였다. 업무미숙으로 기금에 손실을 끼친 것은 예사고, 부실채권의 매각실수와 공적 자금 과다지원, 심지어 직원의 개인적 횡령에 이르기까지…. 두 기관의 관리소홀로 무려 1조원에 육박하는 국민 혈세가 허공으로 날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KAMCO의 경우 자체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외부에 매각해야 할 부실채권을 자신들이 턱없이 싼 값에 사들여, 무려 3,558억원의 이득을 챙긴 것으로 지적됐다. 부실채권정리기금 관리자의 지위를 악용해 '안방도둑' 행세를 한 것이다. 물론 이 돈은 고스란히 국민 혈세로 조성된 부실채권정리기금의 손실로 이어졌다. KAMCO는 또 보증채권을 무담보채권으로 분류해 헐값에 잘못 매각했다가 수백억원을 손해보기도 했고, 사전검토조차 없이 제 기능도 못하는 기업구조조정회사(CRC)를 세웠다가 587억원을 낭비하기도 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공적자금의 관리가 이처럼 부실한데도 사전감시와 견제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기획예산처가 집계한 '2002년 기금운용평가' 자산운용부문에서 부실채권정리기금과 예금보험기금은 국내 46개 정부기금 중 나란히 1, 2위의 평점을 얻어 오히려'최우수 모범기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참으로 낯뜨거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미 부실채권정리기금의 운용기간(1997년 11월∼2002년 11월)이 끝난 뒤에 나온 이번 감사결과 역시 '사후 약방문' 격이다. 때문에 국가적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차제에 공적자금의 운용과 집행에 대한 일상적 감시장치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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