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회사에 다니는 박모(38·여)씨는 최근 초등학생 딸을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이민알선업체를 통해 캐나다 영주권을 취득했다. 외국인학교 입학자격이 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 해외 거주 5년 이상 내국인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 박씨는 "캐나다에 2번 다녀오고 600만원의 수수료를 들여 1년만에 영주권을 손에 쥐었다"며 "미국처럼 영주권 취득이 까다롭지 않은 동남아시아나 캐나다 영주권을 얻어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외국인학교가 내국인 학생의 해외유학 예비학교로 전락하고 있다. 26일 교육인적자원부와 외국인학교 관계자 등에 따르면 입학자격이 없는 내국인들이 영주권 취득 등 각종 편법을 동원, 외국인학교를 자녀의 해외유학을 위한 중간경유지로 악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외국인들은 원하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지 못해 개인교사를 고용해 가정에서 학습을 시키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서울 강남의 A외국인학교 관계자는 "입학자격을 얻기 위해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의 영주권을 돈을 주고 사거나 국내 거주 외국인 가정에 자녀를 입양시키는 방법까지 동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근 들어 이 같은 편법 입학을 막기 위해 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있어도 해외 거주 경험이 없는 내국인에 대해선 원서 접수를 아예 거부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 2명을 외국인학교에 보내고 있는 김모(41·미국계 기업 부장)씨는 "임신한 회사 동료 중에는 미국에서 아이를 낳아 외국인학교에 보내기 위해 6개월 이상 장기 휴직을 신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런 식으로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얻은 내국인이 유치원 때부터 외국인학교 정원을 차지하기 때문에 막상 해외에서 장기 체류하고 돌아온 내국인은 2년 이상 기다려도 입학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더욱이 1990년대 중반 조기유학 열풍이 불면서 해외로 나갔던 유학생이 대거 귀국하고 있어 외국인학교 입학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귀국학생이 연간 1만명에 육박하고 이 중 영어권(미국 뉴질랜드 호주 영국 등) 국가에서 귀국한 학생이 68.1%나 된다"며 "한국어 능력 부족에 따른 학습부진, 내국학생과의 문화갈등으로 국내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거나 방황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특별학급이나 외국인학교는 터무니없이 부족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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