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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우연이란 이름의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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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우연이란 이름의 섭리

입력
2004.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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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소설가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를 보면 주인공 산티아고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사람이나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신의 섭리를 알려주는 지표이고 기호다.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의 윌리엄 수도사도 기호와 기호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 믿고 그것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그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의도와 그에 따른 결과 간의 필연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의도와 그 결과 간의 불일치였다. 그는 탄식한다. "나는 가상의 질서만 좇으며 죽자고 그것만 고집했다. 우주에는 질서가 없다는 것을 내 왜 진작 몰랐던고." 결국 윌리엄이 깨닫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은 우연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이다.고분자 생물학자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에 따르면 200개의 아미노산 잔기(殘基)를 가지고 있는 단백질에서 199개까지의 아미노산 잔기의 배열 순서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하더라도 아직 분석에 의해 규명되지 않고 남아 있는 하나의 단백질 잔기의 성질을 예측할 수 있는 이론적 또는 경험적 법칙을 세우기는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단백질 구조는 임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개의 기능적 단백질의 개체 발생 안에 생물권 전체의 기원과 그 혈통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단백질의 1차 구조는 그 기원에 관해 임의적인 우연성 이외의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생명체는 인공물과는 달리 외부적인 프로젝트나 미리 규정된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생체의 합목적성이나 진화의 방향은 (물론 인간의 역사도) 헤겔이나 다윈이 생각하듯이 미리 결정된 것도 아니고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도 아니다.

진화는 돌연변이가 자연도태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돌연변이가 생기게 되는 이유는 미시적 세계의 우연적인 교란이다. 이러한 교란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근원은 물질의 양자적 구조에서 비롯된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야말로 돌연변이가 생겨나는 근본적인 이유이며 따라서 이러한 사건은 "본성에서부터 본질적으로 예견불가능한 사건" 즉 전적으로 우연적인 것이다.

메를로 퐁티가 이미 간파했듯이 인간의 행위의 의미 역시 그 행위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 행위 이후에 일어나는 우연적 사건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그것이 곧 역사이기에 인간은 자기 행위의 의미를 도저히 알 수 없는 비극적인 (어쩌면 대단히 희극적인) 존재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가벼운 것이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에서 토마스는 자기와 테레사의 만남이 여섯 번의 거의 불가능한 우연에 근거했다는 생각에 일종의 불쾌감을 느낀다. 이러한 불쾌감이야말로 존재의 가벼움을 문득 느끼게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거북한 느낌이리라. 이러한 불쾌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인간은 이 우주를 하나의 필연적인 것으로서, 즉 종교적인 신의 섭리나 혹은 과학적인 인과관계를 함축하고 있는 하나의 기호로서 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우리의 삶을 한없이 무겁게 한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 헤매는 산티아고 역시 이러한 필연의 신화에 얽매인 불쌍한 존재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탄생 자체가 확률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엄청난 우연이다. 물론 그 우주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 역시 다 우연이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필연의 신화에 때묻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우연이야말로 신의 섭리를 그대로 드러내준다. 이러한 우연을 그냥 받아들일 순 없을까? "마술처럼 신비스러운 것은 필연이 아니고 우연이다. 사랑이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자면 처음 순간부터 우연들이 사랑 위에 내려앉아 있어야 한다. 마치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어깨 위에 내려 앉은 새들처럼." 우연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을까. 그 자체로서 신의 섭리인 우연을.

/김주환 연세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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