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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성장과 분배는 상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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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성장과 분배는 상생한다

입력
2004.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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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를 발견한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1743∼1794). 이공계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그의 이름 정도는 기억할 게다. 고등법원 검사의 아들로 태어나 법학을 전공했지만 곧바로 과학 연구에 열중하여 '질량보존의 법칙'을 확립하는 등 무수한 업적을 남겼다.그는 25세 때부터 징세청부인(徵稅請負人)을 겸했다. 당시 인구 2,500만 명의 프랑스에는 징세청부인이 3만 명이나 있었는데 간접세를 거두어 일정 금액만 정부에 납입하고 나머지는 수입이었다. 그는 이 돈을 연구비에 충당했지만 이로 인해 공포정치의 와중에서 51세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에는 실학자 박제가(1750∼1805)가 있었다. 29세에 중국의 앞선 문물제도와 생활양식을 소개하면서 상공업 진흥과 기술 혁신을 주장한 '북학의(北學議)'를 펴냈다. 주로 가마를 타고 다니던 시절에 수레와 도로(물류)의 중요성부터 설파했다. 사람들이 비단옷을 입지 않으면 직조기술이 퇴보하며, 재물은 샘물과 같아서 퍼내야 다시 생기는 법이라 했다. 상인은 사농공상의 나머지 셋을 서로 통하게 해주는 중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왕조시대의 양반사회에서 서출인 그가 '북학의'를 임금에게 상소하기까지는 무려 20년이나 걸렸다. "법을 바꾸지 않는다면 지금의 풍속 하에서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한 그였지만 친척의 옥사에 연루되어 고문과 유배의 후유증으로 55세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프랑스에는 국영 연구기관과 교육기관은 물론 과학자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혁명이 허름한 두 대학밖에 없었던 영국에서 일어난 까닭이 무엇일까. 프랑스는 지휘통제를 앞세운 간섭사회였지만 영국은 특허제도가 있는 자유방임사회였다.

두 세기가 지난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졌나? 미국식 자유주의보다는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우리의 바람직한 사회 모델로 보는 이들이 많다지만 한 가지 극명한 역사적 진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다름 아닌 북유럽의 경제 수준이다. 세계를 둘러보면 어느 수준 이상으로 경제가 발전한 사회라야 환경이 깨끗하고 사람들이 오래 산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5,000 달러를 넘어서야 비로소 1인당 에너지 소비량도 줄고 사회기반도 충실해지며 빈부 격차가 다시 축소되는 것이다. 북유럽식 모델을 따르려면 무엇보다도 경제의 파이부터 키워야 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성장과 분배야말로 밀접한 상생 관계에 있는 것이다.

/조영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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