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은 사람들에게 발명품을 보여주고 설명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시골집 정원에 무거운 회전문을 설치해 놓았다. 방문객들은 지날 때마다 그 문을 밀어야 했다. "선생은 편리한 발명을 많이 했는데, 왜 문은 이렇게 무겁게 놔둡니까?" 한 방문객이 묻자, 에디슨이 웃으며 말했다. "그 문을 통과하는 사람은 지붕 위 물탱크로 30리터씩 물을 펌프질 해 올리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방문객의 힘을 이용하는 아이디어가 얄궂지만, 과학을 생활화한 재치는 '발명왕'답다.미국은 독립 때부터 과학기술자의 역할이 컸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과학기술자 출신이었다. 초대 대통령을 지낸 워싱턴은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토지측량사가 되었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제퍼슨은 건축가였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인쇄기술자였으며, 열역학 해양학 기상학 등도 깊이 연구했다. 그가 발명한 '프랭클린 스토브'는 아직도 생산되고 있다. 엔지니어 정치인들은 미국을 젊고 활기차고 강대한 나라로 가꿔왔다.
'과학의 달' 5월과 '발명의 날' 19일에 돌아보면, 우리 역사에도 과학·발명가였던 위인이 많았다. 가장 높이 추앙 받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업적도 과학발명에서 휘황한 빛을 발한다. 전인적 차원에서도 존경 받고 있지만,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와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제조는 그들 생애의 핵심이기도 했다. 고귀한 성품이 과학발명에 관심을 갖게 한 것인지, 과학정신이 인간성을 높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장영실이 세계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하고, 세종대왕이 1442년 5월 19일 이 측우기를 공식 사용한 날을 기념하는 것이 '발명의 날'이다. 장영실의 측우기는 좀더 과학적 방법으로 강수량을 잴 필요에 따라 연구되었다. 농업국가였던 조선에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고 통계를 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도 드물었다. 그 측우기는 이탈리아의 가스텔리가 발명한 것보다 200년이나 앞섰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총장 공모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탠퍼드대 러플린 교수가 신청했다는 소식에 반갑고도 씁쓸하다. 현재 포항공대 아·태이론물리센터 소장이기도 한 이 미국인은 한국에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 반갑다. 대표적 지한파 학자인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말한다. 그 꿈은 젊은 과학자들이 독립심과 도전의식을 갖고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도록 돕는 것이다. 씁쓸한 것은 외국인으로부터 '과학의 꿈'까지 수입해야 하는 점이다. 그 정도로 우리 사회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하다.
17대 국회의원 당선자 중에 과학자나 기술자 출신이 몇 명 있다. 한국해양연구원 연구원 출신의 제종길 당선자는 시화호의 생태 공원화 운동을 펴고 있다. 대덕연구단지에서도 처음 의원이 배출됐다. 한국과학기술원의 홍창선 총장과 한국기계연구원장을 지낸 서상기 호서대 교수가 비례대표로 각각 당선됐다. 이공계 문제해결에 나서겠다고 다짐하는 이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그러나 더 많은 엔지니어 출신 의원들이 나와서 이공계 부흥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연구와 궁리를 많이 하는 일본인이 노벨상을 많이 받는 것은 당연하다. 칭화(淸華)대에서 공학을 전공한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중국의 현대화를 이끌고 있는 점도 유념할 만하다. 우리는 첨단과학의 시대에도 출세주의와 진부한 사농공상(士農工商) 의식에 잡혀 있는 것이 아닌가. 국회의원 뿐 아니라 엔지니어 총리, 대통령도 기다릴 만하다.
엔지니어를 대우하지 않는 사회의 꿈은 빈곤하다. 미국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는 광산 엔지니어 출신이었다. 그는 엔지니어의 위대성을 역설했다. "공학은 돈, 금속, 에너지를 쓸모 있게 한다. 공학은 사람에게 직업과 집을 제공한다. 또 생활수준을 높이고 삶을 안락하게 만든다. 이는 엔지니어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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