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게임은 '폐인'을 양산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온라인 게임마다 이런 '폐인방지인증' 딱지를 붙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폐인이란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침식(寢食)마저 철폐하고 온종일 PC앞에 앉아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 게임 업체 입장에서는 매출 공헌도 1등 고객인데, 의외로 이들을 문전박대하는 게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이 지나치게 캐릭터 육성(레벨업)에 몰두한 나머지 소위 '물'을 흐리고 있는데다 쉽게 레벨업을 시켜주는 아이템 거래가 성행하면서 게임업체에 윤리적 비난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넥슨의 '마비노기'는 이러한 폐인방지 장치를 최초로 도입한 게임이다. 만화적인 캐릭터와 경쾌한 분위기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마비노기는 지난해 오픈베타를 실시하면서 '하루 최대 2시간 사용'이라는 제한 규정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본래 2시간 사용 제한의 목적은 제한된 수의 서버만 가동하는 오픈 베타의 제약상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서버가 붐비는 현상을 막자는 것이었으나, 자연스럽게 폐인 양산을 막는 역할도 하게 됐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넥슨은 유료화 이후에도 기존 유저층을 대상으로 하루 2시간 무료 플레이를 제공하고 있다.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워크래프트'(Warcraft)를 주제로 만든 온라인게임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에는 최근 '피로도 시스템'이라는 것이 도입됐다. 이는 게임 플레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캐릭터의 피로가 누적되어 샤냥이나 몬스터와의 전투를 통해 얻는 경험치의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도록 만든 장치다. 일종의 '수확체감'의 '생산성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셈. 피로도는 '없음'에서 '최고'까지 5단계로, 최고로 피곤한 캐릭터는 똑같은 활동을 통해 얻는 경험치의 양이 정상상태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WOW는 피로도 시스템 도입으로 폐인과 일반인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이들간의 공정 경쟁이 북돋아지는 효과를 봤다.
WOW의 뒤를 이어 국내 온라인 게임의 대표격인 '리니지2'도 비슷한 목적의 폐인방지 시스템을 도입했다. 주당 게임시간을 30시간으로 제한한 서버를 따로 만들어 이곳에서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은 레벨업에 집착하지 못 하도록 만든 것. 따라서 시간이 아닌 실력으로 승부가 난다. 엔씨소프트는 게이머들이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고 해서 서버의 이름을 '릴랙스'(Relax)라고 이름 붙였다. 이 서버에서는 게임 접속 경과 시간이 1시간 단위로 안내되며, 접속 제한 시간 30분전부터 경고 메시지가 나타난다. 또 게임 접속시 채팅창에 주당 잔여 시간을 알려주며, 제한시간이 넘어가면 강제로 접속이 종료된다.
폐인방지 시스템에 대한 반응은 엇갈리는 편이다. 일부 게이머들은 "내 돈 내고 내가 하겠다는 데 시간 제한이 왠말이냐"며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린다. 리니지2의 경우에는 해당 서버에만 룰이 적용되기 때문에 효과가 제한적이며, 시간 제한을 두면서 이용료는 깎아주지 않는다는(리니지는 정액제 요금) 비판도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그러나 "게임 산업이 사회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계속 유저층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게이머들의 생활과 건강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며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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