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북한이 임금과 가격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는 경제개선 조치를 취한 이후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북한 사회 깊숙이 자리잡아 가고 있고, 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지가 23일 보도했다.이 신문은 한국 정부 인사, 국제구호기구 요원 등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북한에서 빈부계층이 분화 중이며, 성과에 따라 임금수준이 결정되는 자본제적 임금형태가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먼지속에서 싹튼 자본주의'라는 제목의 기사 요지.
1단계로 5∼10개 한국기업이 입주할 개성공단에서 북한 노동자들은 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 받는다. 북한 개혁의 징표는 개성공단 말고도 식량 배급 시스템 철폐 움직임, 시장의 확산, 이윤추구형의 국영공장 출현 등을 들 수 있다.
주목되는 점은 소비 문화 성장이다. 평양에는 국정가격표가 붙지않은 스페인산 오렌지와 중국산 전자제품을 파는 시장이 확산되고 있다. 거리에는 가판점, 자동차 광고판 등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평양 시내 휴대폰도 2002년 3,000대에서 지난해 2만대로 급증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장회의 정책조정관은 "북한이 개혁 시늉만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북한의 잣대로 보면 그 개혁조치의 의미는 중대하다"고 말했다. 많은 관측통은 개혁이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북한 지도부가 현대화를 꾀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재건을 통한 권력 유지를 이루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북한에서 번창하는 사람들은 정부와 군, 암시장에 끈이 있어 국경무역 등을 통해 이득을 보는 이들이다. 하지만 하층, 특히 농촌에서는 가격통제와 배급제 폐지로 물가가 치솟자 갈수록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 토니 밴버리 아시아담당관은 "주민 2,200만명 중 650만명이 식량난을 겪고 있는데 650만에는 개혁으로 파생된 빈민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개혁이 진행되면 승자와 패자가 생겨나듯 북한에서도 새로운 낙오층이 생기고 있다"며 북한 사회의 양극화를 설명했다. 일자리에 따라 임금 격차가 심해지고 일자리에 대한 대대적인 조정이 이뤄지는 도시에서도 상당수 빈민이 형성됐다.
북한에서는 돈이 돈을 번다. 지난해 서울에 온 탈북자 김모(30)씨는 돈을 빌릴 수 있거나 유력한 간부를 알고 있는 이웃들은 잘 살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비참하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과 관계 있는 한 사람은 북중 국경 지대의 한 공장이 성과급제를 시행해 생산성이 2배 이상 급증했다고 전했다.
어쨌든 북한은 점진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공장들은 자체적으로 이윤을 내야 하며, 사업 결정권은 노동당 간부가 아닌 공장 지배인에게 있다.
북한의 개혁조치의 성과 중 일부는 1990년 후반 금강산 관광으로 대변되는 햇볕정책을 채택한 한국의 도움 덕분이지만, 한국의 관리들은 북한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뿐 결코 환상을 갖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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