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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공동善 지킴이 서영훈 <45>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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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공동善 지킴이 서영훈 <45>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입력
2004.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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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말 경실련 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서경석(徐京錫) 목사가 일종의 새로운 민족운동을 구상하고 나에게 상의해왔다. 김일성(金日成) 주석 사망 이후 흉년이 들고 경제사정이 매우 어려워진 북한의 동포를 돕는 운동을 전개해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마땅히 우리가 힘을 모아야 될 일이기에 나는 그 취지에 찬동을 하고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서 목사로 말하면 그의 조부 서병호(徐丙浩) 선생은 해방 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적십자회 사무총장, 신한청년당 당수를 지냈고, 부친 재현(載賢)씨도 내가 여러 번 뵌 적이 있는 독립운동가이다. 그 증조부인 서경조(徐景祚) 선생은 백씨(伯氏)되는 서상륜(徐相崙) 선생과 더불어 한국에 기독교를 처음 받아들인 주역임을 나는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서 목사에 대해서도 이미 해군장교로 군 복무할 때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독재를 비판하다 복역한 전력도 있고, 소위 YH사건 때에도 깊이 개입한 내력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란 조직을 준비, 96년 6월에 창립대회를 갖고 북한동포 돕기 범국민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상임대표를 맡았고 서 목사가 추진위원장이 되고 김수환(金壽煥) 추기경과 강원룡(姜元龍) 목사를 고문으로 모셨다. 명동과 종로 등지에서 가두 캠페인도 하고, 25개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재중국 동포의 밤'도 개최했으며, 사회각계인사 100인을 초청해 시국선언도 발표하였다. 운동을 벌인 지 두 달 만에 들어온 약 2억원 중 1억7,000만원으로 밀가루 5만 포를 북한에 보냈다.

또 한국 취업을 희망하는 재중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 사건이 많아 서 목사와 몇 사람이 중국 현지의 실정을 조사하고 피해자들을 돕는 일도 했다. 97년 6,7월에는 비료 2,000톤을 보냈고 9월에는 미국 LA에 미주 우리민족서로돕기 운동본부를 '월드쉐어링무브먼트'라는 이름으로 발족하고 미국 책임자는 박희근(朴喜根) 영락교회 목사, 한국의 책임자는 나로 정했다. 10여 일에 걸쳐 구 소련지역 거주 고려인 강제이주 50주년을 기념하는 '회상의 열차'를 블라디보스톡에서 타쉬켄트까지 총 8,000km를 운행하며 여러 도시에 살고 있는 고려인을 위문하는 행사도 했다.

이 운동을 1년쯤 하고 나니 '북한을 왜 돕느냐' '남침 야욕과 힘을 길러주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나도 친구 등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도 이런 국내 반응을 알고 '잘 사는 남한이 북한의 동포를 안 돕는데 우리가 북한을 돕기는 거북하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적국에 기근이 들면 도와주는데 한 핏줄인 동포는 마땅히 도와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열심히 했다.

처음에는 나만 상임대표였으나 98년에 들어서서 송월주(宋月珠) 스님, 최창무(崔昌武) 주교, 강문규(姜汶圭)씨, 김준곤(金俊坤) 목사 등이 공동대표로 추가되어 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그 해 4월에는 강문규 공동대표와 서경석 집행위원장이 직접 북한을 방문해 북측과 북한돕기운동의 효과적 전개방법에 대해 협의하고 돌아왔다. 또 북한 동포를 위한 국제금식의 날을 선포했는데 김 추기경의 건의를 받은 교황 요한 바오로2세도 이날 한끼를 금식했으며 36개국에서 뜻 있는 이들의 이에 동참했다.

그 후 식량은 차츰 정부가 대북지원 예산으로 해마다 돕게 됐고, 비료는 대한적십자사에서 책임을 지고 있어 현재 이 운동은 농업기술지원, 젖 염소 시범목장 지원, 보건의료협력, 아동급식지원 등을 주로 하고 있다.

나는 처음에는 거리 캠페인이나 만찬회 등 수많은 회합을 통해 이 운동에 앞장섰으나 제2건국운동과 새천년민주당에 참여하면서 그 책임을 벗고 측면에서만 돕게 됐다. 지금은 이 운동의 고문으로 있다.

북한동포돕기를 처음 할 때는 한적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두 곳이 창구였으나 지금은 큰 교회들의 경우 직접 북한을 돕고 있고 한민족복지재단, 굿네이버스 등의 단체들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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