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23일 각료제청권 행사에 대해 여전히 난색을 표하고 있는 고건 총리를 '삼고초려'하기로 했다. 김우식 비서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고 총리에게 이미 두 차례 제청권 행사를 요청했다"고 공개하면서 "24일 한번 더 찾아 뵐 것"이라고 밝혔다.청와대측이 그간의 경위까지 공개한 것은 조기개각 의지를 분명히 하고, 제청권 행사가 노무현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임을 대외적으로 강조해 고 총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고 총리는 제청권 행사를 안 한다는 것이 아니라 고민하고 있고 앞으로 2,3일이 고비가 될 것"이라며 "고 총리가 '떠나는 마당에 제청을 하는 것이 국민 정서상 대통령에게 누가 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특히 "(고 총리에게) 그러나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또 대통령이 그런 의사를 갖고 있음을 깊이 생각해 달라고 했다"고 말해 편법 논란에 대한 책임은 모두 대통령이 질 것임을 분명히 했다. 때문에 내부에서는 "고 총리가 계속 거절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김 실장은 "그래도 고 총리의 뜻이 확고하다면 나름의 절차를 밟아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6월 말로 개각을 늦출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또 당초 5∼6개가 검토되던 개각 폭은 결국 통일, 복지, 문화 등 정치인이 입각하게 되는 3개 부처로만 정리됐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통일부 장관자리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는 바람에 부처에서 난리가 났다"며 "시기를 당기는데 요란하게 여러 장관을 바꿀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의 입각경쟁 때문에 조기개각을 밀어붙이지만, 개각 폭을 최소화해 고 총리의 입장을 배려하겠다는 뜻이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책임총리제 원칙 훼손에 부담감 無言의 거부… 막판 수용할 수도
고건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거듭된 장관임명 제청권 행사요청에 대해 23일까지도 수락의 뜻을 밝히지 않고 있다. 청와대측은 고 총리에 대한 소망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 총리측은 이를 시인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고 총리의 침묵은 사실상 거부의 뜻이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그는 예정보다 이른 25일께 사표를 제출하고 그대로 떠나겠다는 의사까지 주변에 밝히기도 했다.
고 총리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은 책임총리제의 훼손. 그는 특히 시중 여론이 제청권 행사를 헌법정신 훼손이라고 몰아가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또 "조기개각이 꼭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제청권 행사가 김혁규 총리 임명동의안 통과문제 등 국정안정에 도리어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지인들과 만나서는 "원칙과 상식에 따르겠다"고 재차 강조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물러나겠다는 의지를 더욱 선명히 했다.
고 총리는 1980년 5·17 계엄확대에 반대해 청와대 정무수석직을 전격 사퇴하고 국보위에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의 경험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 결단"이라고 회고하고 언급하는 것이 최근 고 총리측의 분위기다.
물론 총리실 주변에서는 고 대행이 결국 뜻을 굽히고 제청권을 행사, 원만한 마무리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청와대측은 24일 김우식 비서실장을 통해 고 총리에 대한 마지막 담판을 시도할 것임을 공개했다. 하지만 한 측근은 "총리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노 대통령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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