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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협력적 자주국방' 큰 그림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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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협력적 자주국방' 큰 그림 있나

입력
2004.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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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미국의 안보정책이 갑자기 바뀔 때를 대비하여 '자주국방'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 자주국방론은 반미, 친미 논쟁에 휘말려 다양한 오해를 불러 일으켰으나 최근 주한미군 일부 병력 이라크 차출, 한미동맹 재조정 협의 등을 보면 마치 노 대통령은 미국 안보정책의 변화를 읽고 있었던 것 같다.그런데 자주국방이라는 개념이 한미동맹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한국 보수세력들의 비판이 거세지고, 국민의 안보 불안이 커지자 정부는 한미동맹과 한국군의 방위력 증강을 동시에 추진할 것이라는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최근 주한미군 병력 이라크 차출을 계기로 국민들의 안보 불안 심리가 다시 커지자 노 대통령은 20일 "협력적 자주국방 체계의 조기 구축"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였다.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개념은 한미동맹과 한국 방위의 한국화를 같이 끌고 가고자 하는 현 정부의 고심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협력적 자주국방의 목표에 대해서는 정부가 깊이 고민한 것 같지 않다. 즉 무엇을 위하여 한국 방위를 한국화하고 미국과 군사적으로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을 명확히 그리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협력적 자주국방의 그림을 정확히 그리기 위한 첫 걸음은 '동맹의 딜레마'라는 국제정치이론에서부터 시작한다. 동맹의 딜레마는 소위 '포기'와 '연루' 사이의 딜레마로 표현된다. 강한 동맹관계를 갖게 되면 동맹국의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고(연루), 약한 동맹관계를 갖게 되면 동맹국으로부터 버림받을 가능성이 크다(포기)는 뜻이다. 이 이론에서 보면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개념은 포기를 한미협력으로, 연루를 자주적 국방으로 동시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렇지 않다.

한미동맹은 과거 한국 방위의 한국화가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약소국 시절 체결되었으므로 강한 동맹으로 인한 연루 위험보다 방어의 혜택이 큰 형태의 동맹이었다. 따라서 견고한 한미동맹은 한국 군사안보 정책의 핵심이 되어 왔다. 그런데 한국 국력의 성장, 그리고 오랜 한미 연합방위 능력의 경험 등은 동맹에 있어서 한국의 역할 증대가 요구되는 배경으로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탈냉전기 이러한 역할 증대는 미군을 주요 이해지역의 위협에 신속히 대응하는 신속기동군으로 만드는 것에 한국이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미국은 주요 지역에서의 신속한 개입을 위해 한국에 배치된 냉전형 고정군을 신속기동군으로 바꾸고 이를 위해 한국방위 임무를 상당 부분 한국에 넘기는 동시에 한국군이 미군을 지원하는 새로운 한미동맹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한미동맹은 냉전기의 방어형 동맹으로 남기보다는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 질서 관리에 필요한 개입형 동맹으로 변화하게 된다. 미국이 신속성을 요구하는 세계 안보 질서 관리 체계의 정점에 서고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 하위 분업 체계로 편입되는 그런 형태의 동맹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방위의 한국화와 한미동맹을 유지하자는 협력적 자주국방의 귀결은 "개입형 한미동맹"이며 연루 가능성이 높은 한미동맹이 되는 것이다.

한국은 포기와 연루의 딜레마를 극복하고자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선택을 하였다. 그러나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대통령이 지시한 협력적 자주국방 체계의 조기 구축 검토는 한미동맹을 개입형 동맹으로 전환하는 체계를 조기 구축하라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이 경우 한국은 연루라는 동맹의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연루로 인하여 생기는 인명 및 정치, 경제적 코스트는 매우 클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개입형 동맹을 한국 이해지역의 안정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연루의 위험을 필요에 따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 것인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미래전략연구원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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