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어디 있을까. 가슴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머리 속에 있다. 여성 평균 1,250g, 남성 평균 1,400g의 단백질 덩어리인 뇌는 약 140억개의 신경세포로 이뤄져있으며 첨단 기술로도 밝혀내지 못한 신기한 방법으로 몸과 마음을 통제한다. 뇌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면 우리를 괴롭히는 심신의 여러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뇌를 연구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효율적인 도구로 학자들은 '뇌지도'를 작성해 사용한다. 뇌의 각 부위는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면서 유기적으로 일할 뿐 아니라 뇌를 구성하는 성분도 저마다 달라 영역을 나눌 수 있다.
최근 한국과학재단이 주최한 '뇌 기능 매핑(mapping)을 위한 한국인 표준 뇌지도 제작과 응용' 심포지엄에서는 한국인의 뇌를 연구해 만든 표준 뇌지도가 공개돼 이목을 끌었다. 표준 뇌지도는 어디에 필요하며 한국인의 뇌는 과연 다른 민족의 뇌와 어떻게 다를까.
백인 뇌지도 적용 땐 조절과정 필요
뇌의 구조는 흔히 전구의 집합체에 비유된다. 뇌를 이루는 세포인 뉴런은 '켜짐'과 '꺼짐' 등 두 가지 신호를 표시한다. 뇌는 1,010∼1,011개의 '작은 전구'와 그 사이를 이어주는 '전선'으로 이뤄진다.
전구 모양이 다양한 것처럼 뇌 세포의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뇌지도를 그리는 방법 중 하나는 뇌를 이루는 세포의 생김새와 성질을 일일이 분석해 성분별 분포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영국의 학자 브로드만이 만든 '브로드만영역'이 여기 속한다. 이는 방법상 가장 객관적인 지도라고 볼 수 있지만 좌표가 정확히 표시되지 않아 MRI 연구와 함께 쓰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현재 표준 뇌지도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프랑스 과학자 탈라이락이 사망한 노파의 뇌를 얇게 자른 후 이를 관찰해 그린 탈라이락 지도다. 위도와 경도라는 약속으로 지리상 위치를 찾을 수 있듯이 탈라이락 지도상의 세 좌표를 알면 뇌의 특정 지점을 정확히 알릴 수 있어 학자들간 의사소통이나 뇌수술 등 임상 현장에서의 쓰임새가 높다.
1993년 구성된 '국제 뇌지도 회의(ICBM)'도 표준 뇌지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들의 목표는 사람의 뇌에 대한 확률적 좌표시스템의 구축.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 등 9개국이 모여 만든 이 국제회의는 전 세계 7,000여명의 뇌를 조사 중이며 2000년 452명의 뇌 구조를 토대로 한 표준 뇌지도를 만들어 발표했다.
문제는 452명의 대부분이 백인으로 구성돼 있어 우리나라 사람에게 적용하기에는 크기 조절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뇌모양의 의미 논할 단계는 안돼
이번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한국인 표준 뇌지도 작성은 한양대 의공학과 김선일 이종민 교수, 서울대 핵의학과 이동수 교수, 서울대 신경정신과 권준수 교수, 연세대 신경정신과 김재진 교수 연구팀의 공동연구로 이뤄졌다.
이들이 2년에 걸쳐 한국남녀 100명의 뇌를 fMRI로 촬영한 결과 한국인의 뇌는 서양인의 그것보다 앞뒤 길이가 짧고 옆으로 넓은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용량도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대 김재진 교수는 "아직 생김새와 모양이 다른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다르다는 사실보다는 한국인에게 잘 맞는 표준 뇌지도를 만들어 연구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작성한 한국인 뇌지도는 87개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영역이 뇌 전체를 커버하는 것은 아니고 신경정신학적으로 의미를 지니는 부분을 우선으로 나누어 뇌 안쪽의 '백질' 부분은 제외돼 있다. 연구팀이 사용한 방법은 '형태적 분할법'. 큰 강이나 산맥으로 지형을 구분하는 것처럼 뇌에 있는 주름 모양을 분석해 영역을 나눠가는 방법이다. 실제로 뇌에 있는 굵은 주름은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영역의 경계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뇌의 영역별 기능은 세계 학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 정리가 돼 있으며 현재 작업은 '누가 영역을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나누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번 연구는 한국인의 표준 뇌지도에 관한 첫 연구로 한국인의 뇌지도가 정확히 완성되면 외국의 표준 뇌지도를 쓸 때 거쳐야 하는 번거로운 크기 변환 작업을 생략할 수 있다.
정신질환 치료엔 뇌지도가 으뜸
표준 뇌지도의 가장 큰 쓰임새는 질병에 관한 원인을 찾아내 이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울증이나 정신분열증 같은 정신질환은 뇌의 특정 부위가 이상을 일으켜 유발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확한 부위를 알아내면 이를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전망이다.
민족별 표준 뇌지도가 완성된다면 이는 궁극적으로 각 민족간 행동 유형의 차이를 설명하는 근거로도 쓰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특정 민족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도구로 악용될 우려가 있어 학자들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사진제공=한양대 의공학과, 연세대 신경정신과>사진제공=한양대>
● 뇌의 구조와 역할
인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르네상스 시대부터 학자들은 뇌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려고 시작했다. 그러나 뇌의 기능에 관한 초기 연구는 골상학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말 그대로 겉으로 보이는 두상의 모양새에 따라 한 사람이 어느 영역에서 우수한지 예측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았다. 뇌가 부위에 따라 다른 기능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은 동물 실험이나 정신분열증 등 병에 걸린 사람의 뇌를 관찰하면서 부터다.
1970년대 발명된 MRI(자기공명영상법)에 이어 조직의 활동 상태까지 측정할 수 있는 fMRI(functional MRI·기능 MRI)는 그 동안 죽은 사람의 뇌를 해부해야만 가능했던 뇌 연구를 산 사람의 것으로 확장했다. 기계로 뇌의 부위별 활동 내용을 쉽게 측정할 수 있게 되면서 뇌 부위에 따라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 실험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신체 각 부위가 저마다 다른 기능을 갖고 혀의 부분별로 느끼는 맛이 제각각 다른 것처럼 뇌도 영역별로 다른 일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후두엽에 위치한 '퓨지폰 자이러스'라는 부위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역할만 담당하며 앞쪽 중앙에 있는 '미들 프런털 자이러스'는 단기 기억에만 쓰인다. /김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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