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 전문기업인 M사는 1990년대 중반까지 직원들이 해외 유학을 원하는 경우 급여 뿐 아니라 학비와 체재비까지 지원했다. 해외파들은 연수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1등 공신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대주주가 외국계 펀드로 바뀌면서 이 같은 연수제도는 사라졌다. S전자는 3월 이사회에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하다'며 관련 안건을 상정했다. 그러나 외국인 주주는 "경기가 좋지 않다"며 "배당금을 올리거나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회사는 계획했던 설비 투자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들이 한국 기업의 장기 발전을 위한 시설투자나 연구개발(R& D)은 외면한 채 배당요구 등의 단기적인 이익 실현에만 주력,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빼앗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국인 지분 증가로 경영권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20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코스피(KOSPI) 200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국내기업의 경영권 불안 및 대응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지분이 늘면서 외국인 투자가의 경영간섭으로 애로를 겪은 적이 있다고 밝힌 기업이 12.9%에 달했다.
특히 이중 47.6%는 외국인 투자가들로부터 설비투자 대신 배당 확대를 요구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상의 관계자는 "회사명을 밝힐 순 없지만 10곳의 회사가 설비투자 대신 배당 확대를 요구 받았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한 경우도 38.1%, 임원교체를 요구한 경우는 14.3%에 달했다.
또 조사 기업 중 경영권 유지에 불안을 느끼고 있거나 향후 그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기업이 18.2%였고 이들기업은 경영권 불안의 가장 큰 이유로 외국인 지분 증가(30.3%)를 지목했다.
그 뒤를 주식가치 저평가(27.3%), 지배주주 지분 감소(21.2%), 인수·합병(M& A) 방어제도 미흡(15.2%) 등이 이었다. 주식시장의 외국인 비중은 2000년 초 21.9%에서 최근 43%까지 높아진 상태다.
보고서는 특히 "삼성전자, 현대차 등 5대그룹의 주력기업들이 모두 내부 지분에 비해 외국인 지분이 훨씬 높아 외국인이 마음먹기에 따라 기업경영에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상의 관계자는 "외국인투자가들은 주로 배당이나 주가관리 등 단기실적을 중시하고 있어 투자확대 등 기업의 장기성장 기반을 확충하려는 국내경영진과 마찰을 빚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계, 반발 움직임
노동계는 이러한 외국인 자본의 움직임을 사력을 다해 저지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자칫 '외노(外勞)대립' 양상마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위원장 이정원)은 "일부 증권사가 고배당을 통해 외국 자본과 지주회사의 배만 불리고 있다"며 "하나증권과 메리츠증권 등 고배당을 실시하는 회사의 주주총회를 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증권산업노조는 특히 "외국자본 계열의 일부 증권회사의 경우 국내 평균 배당성향보다 30∼40배 가까운 고율 배당을 시행하고 있어 국부 유출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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