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삼천리 화려강산’이라고 하지만 하동포구 80리로 일컬어지는 섬진강일대 만큼 축복받은 땅이 또 있을까. 강변도로를 따라 봄부터 시작된 온갖 꽃의 흐드러짐이 신록으로 마무리할 단계에 이르니 이제 강이 들썩인다. 그 강의 중심에 재첩이 있다.섬진강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이어 남한에서 5번째로 큰 강이지만 하동포구를 제외하면 이름을 내걸만한 큰 포구도 없다. 강폭이 좁고 강바닥에 돌부리들이 많아 뱃길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화위복이랄까. 낙동강, 금강 등 다른 강들이 하구언 개발 등의 틈바구니속에서 오염돼갔지만 섬진강은 깨끗한 수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60~70년대 재첩은 낙동강의 것이었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낙동강 하구언이 재첩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었다. 이 곳에서 채취한 재첩을 대야에 이고 이집 저집 다니며 외치던 자갈치 아지매의 ‘재첩국 사이소’ 소리를 기억하면 아직도 정겹다. 하지만 그 소리는 이제 추억일 뿐이다.
대신 하동이 낙동강 재첩의 명맥을 이었다. 섬진강은 조수간만의 차에 있어 낙동강에 뒤지지 않는다. 섬진강을 경계로 전남 광양시와 경남 하동군이 나눠지지만 재첩잡이는 하동주민의 몫이다. 광양은 산을 끼고 있어 섬진강으로의 접근이 쉽지 않은 반면 하동은 모래로 형성된 넓은 갯벌이 있어 재첩잡이에 적합한 환경을 형성하고 있다.
하동 재첩잡이는 19번 국도를 따라 하동대교앞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 온도가 적합한 5월부터 추석을 전후한 시기까지이다. 재첩이 가장 맛있는 때는 이중에서도 5~6월. 7월이 지나면 산란기에 접어들어 맛이 떨어진다. 물때도 기다려야 한다. 섬진강의 수위가 무릎에서 허리 정도 찰 때쯤이 적당하다.
하동대교 북쪽에는 섬진강물에 몸을 담근 주민들이 ‘거랭이’라고 불리는 도구를 이용, 강바닥에 숨어있는 재첩을 캐낸다. 수심이 갑자기 깊어지는 대교 남쪽에는 주민들이 배를 이용, 역시 거랭이로 재첩을 긁어 올린다. 원시적이지만 삶의 억척스러움이 묻어나는 광경이다. 강 뒤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는 인간과 자연이 빚는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재첩이 국으로 만들어지는 과정도 재미있다. 강에서 잡은 재첩을 물에 담궈 두면 재첩이 스스로 입을 벌리고 속에 있는 모래, 흙 등 불순물을 토해낸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여러 번 걸러낸 뒤 물에 끓이면서 주걱으로 저어주면 껍데기는 밑에 남고 재첩살만 물위에 뜨게 되는데 이것을 건져내 재첩국 원료로 사용한다.
재첩이 건강식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숙취예방에 좋을 뿐 아니라 칼슘, 철, 인을 비롯, 각종 비타민이 풍부하게 함유돼있기 때문. 재첩속에 들어있는 타우린 성분이 콜레스테롤을 저하하고 간염, 황달 등 간질환에도 효과를 낸다. 고단백에 저지방으로 간장병에도 효험이 있고 유기산의 일종인 호박산이 풍부해 쓸개즙의 분비를 촉진하는 작용도 한다.
재첩의 단점은 비타민 A가 적고 많이 먹으면 몸이 냉해지는 성질이 있다는 점.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재첩음식에는 반드시 부추가 들어간다. 비타민 A의 모체인 베타카로틴이 많으며 몸을 따뜻하게 하는 성분이 있다. 이런 것을 두고 음식궁합이라고 하던가.
하동에서 국내 재첩의 70% 이상이 생산된다고 하지만 전 국민이 충분히 먹을 만큼의 많은 양이 나지는 않는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재첩중 상당량은 중국에서 수입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고 조수간만의 차가 큰 하동에서 나는 재첩은 맛과 영양에서 수입산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동재첩은 우선 색깔이 황갈색에 가깝고 알이 잘아 끓여 놓으면 흐물흐물해진다. 입에 넣으면 부드럽다. 국물이 뜨물처럼 뽀얗게 우러나 구수하면서 시원한 맛을 한껏 낸다. 반면 중국산은 알이 굵고 빛깔도 검은 빛이 나며 혀끝에 닿으면 딱딱하고 질기다. 외관으로만 볼 때는 중국 재첩이 훨씬 크고 반듯하지만 국물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아 시원한 맛을 느끼기 힘들다. 아무래도 하동을 찾아야 제대로 된 하동재첩을 맛볼 가능성이 높다.
/하동=한창만기자 cmhan@hk.co.kr
■다양한 요리들
재첩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다양하다. 재첩국이 워낙 유명하지만 재첩회도 빼놓지 말아야 할 음식이다. 재첩을 삶은 뒤 건더기를 건져내 회처럼 초장에 버무려 내기 때문에 회라고 부른다. 재첩된장국, 수제비도 괜찮다.
재첩국을 맛있게 먹으려면 국을 끓여낸 뒤 부추를 집어넣어야 한다. 특유의 향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식성에 따라 호박이나 풋고추를 다져서 넣으면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간을 맞출 때는 고추가루보다는 풋고추나 청양고추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현지인의 설명.
남해고속도로 하동 IC에서 2.5㎞ 거리에 있는 강변원할매재첩국(055-882-1369)이 이름나있다. 섬진교 초입에 위치한 여여식당(884-0080), 동흥식당(884-2257), 읍내리 청탑예식당 건물 1층의 청탑한식(882-9988)도 유명하다. 재첩국 5000원, 재첩회 3만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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