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조지 W 부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등 한·미·일 정상들이 비슷한 시기에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다. 다행히 노 대통령은 권한정지 두 달간의 탄핵시련으로부터 벗어 난데 비해 나머지 두 사람은 전도가 불투명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권좌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이라크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부시 대통령의 경우부터 살펴보자.싱가포르의 리관유(李光耀)전 총리와 함께 평소 미국에 맞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전 총리가 지난주 또 독설을 퍼부었다. 독설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깝다. 자국 신문과의 회견에서 그는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아랍의 석유 무기화를 촉구했다. 또 미국에 예치한 아랍권 예금을 모두 인출해 미국경제를 파산시켜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그는 '자살 폭탄'테러도 비판했다.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 외에 실익이 뭐냐는 것이다.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석유 무기화와 예금 인출이다. 미국의 이슬람 압살정책에 분연히 맞서는 데는 이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명분 없는 이라크전은 부시의 재선가도는 물론 영국 블레어 정권에게도 치명타가 되고 있다. 일부 외신들은 이들 두 지도자의 연내 동반퇴진을 점치기도 한다. 특히 포로학대 파문은 전쟁의 명분을 통째로 앗아갔다. 만델라를 비롯한 세계의 양심들이 이 추악한 전쟁규탄에 팔을 걷어붙였다. 최근 미국의 언론들은 여론지지도에서 케리후보에 5%이상 뒤진 부시가 반년도 채 안 남은 기간에 이를 만회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고 낙선 가능성을 전하고 있다.
카터정부에서 국가안보특보를 지낸 브레진스키도 최근 저서 '제국의 선택-지배인가 리더십인가'(The Choice- Global Domination or Global Leadership 김명섭 옮김)에서 부시정부의 독선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유엔기후협약과 국제형사재판소 참여를 거부한 미국이 무슨 염치로 국제사회의 공적을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선제공격까지 하느냐고 꾸짖었다. 부시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 때문에 미국은 지금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의 처지도 예사롭지가 않다. 일본정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국민연금 미납스캔들에 그도 관련 있음이 드러났다. 이 파문으로 후쿠다 관방장관은 내각을 떠났다. 총리 꿈을 불태우던 민주당 간 나오토 대표도 낙마했다. 미납파동이 회오리칠 때 고이즈미는 자신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잡아뗐다. 그러나 그의 해명은 거짓임이 곧 밝혀졌다.
지난 14일 총리실이 고이즈미 총리의 과거 미납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납북자 가족 해결을 위한 재방북 의사를 밝힌 직후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충격을 물타기하려 평양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아직은 정치적 공방차원에 머물고 있는 이 파문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이에 비해 탄핵시비에서 벗어난 노 대통령은 홀가분하다. 임기를 겨우 두 달 남긴 국회가 5년 임기 1년차 대통령을 탄핵소추한 것은 애초 상궤를 벗어난 것이었다. 돌아온 대통령의 첫 구호는 상생의 정치다. 그러나 걸림돌이 생겼다. 한나라당이 김혁규 전 경남지사의 총리기용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표면적으론 총선 직전 탈당에 대한 불쾌감이나 속내는 부산 경남 보궐선거에서 그의 영향력을 우려한 때문이다. 한나라당도 소위 '빅5'중 대법원장(강원)을 빼고 국회의장(내정), 감사원장, 헌재소장은 물론 여당의 두 대표까지 호남인 이 정부 인재 풀의 한계를 모를 리 없다. 또 노 대통령이 3선 지사로 이미 검증된 김 전 지사를 총리에 기용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도 알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여권은 한나라당과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전후 사정을 잘 아는 한나라당 역시 '영남 총리안'을 끝까지 물리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상생의 방법은 얼마든지 찾아지리라 본다. 필요하다면 수뇌회담도 열어야 한다. 김혁규 총리안은 17대 국회의 상생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노진환 주필 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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