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가득 놓인 투명한 크리스탈 와인 잔들, 한 사람당 7∼8개는 족히 될 듯 싶다.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코스로 이어지는 정찬, 옆 사람과 나누는 정겨운 대화 중간마다 와인 메이커 혹은 전문가의 친절한 설명까지 더해진다. "당신을 와인 메이커스 디너에 초대합니다."와인 메이커스 디너(Wine Maker's Dinner)란 말 그대로 와이너리(와인 양조장)의 주인이나 와인메이커가 직접 재배·양조한 와인을 음식들과 함께 고객들에게 소개하는 자리.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미식가나 식도락가, 와인애호가들 사이에선 '새로운 식문화 트렌드'로 인기를 쌓아가고 있다.
국내에서 와인 메이커스 디너가 본격 시작된 것은 1999년 그랜드인터콘티넨탈 호텔이 와인 메이커들을 초청, 저녁 식사를 마련하면서부터. 한태숙 마케팅부장은 "당시만 해도 '와인메이커스 디너'라고 하면 '그게 뭐야'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며"지금은 매달 한번씩 열리는 이 행사에 예약이 밀려 좌석이 모자랄 정도"라고 말한다. 굳이 호텔뿐 아니라 이탈리아 레스토랑, 와인바, 심지어 한식당에서도 최근에는 와인 메이커스 디너가 왕왕 열린다.
와인 메이커는 왜 와인에 대해 얘기를 하고 설명까지 더할까? 굳이 이유를 대자면 '와인이기 때문'이다. "와인은 어떤 토양과 기후에서 어떻게 재배되고, 수확된 뒤 어떻게 양조되는 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 과정에 대한 정보를 들으면서 와인의 성격과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지요. 나아가 와인 메이커의 철학과 전통, 역사까지 엿볼 수 있습니다." 와인정보 포털사이트 와인21닷컴 최성순 대표의 얘기다. 와인을 만든 사람과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재미와 의미를 함께 갖춘 이벤트라는 것."
와인 메이커스 디너는 와인을 즐기는 것 뿐 아니라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신동와인의 이종훈 대표는 "평소 접하는 유명 브랜드 와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와인이 더가치 높게 보인다"고 말한다. 마치 갤러리에서 그림을 설명을 곁들여 보면 더 이해가 빠르듯 와인도 하나의 예술작품이라는 것. 알고 마시면 감동이 더해진다.
와인은 사람 만큼 다양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까브드뱅의 윤영선 부장은 "여러가지 종류의 와인을 한 자리에서 맛보다 보면 와인마다 가진 미묘한 맛의 차이를 알게 된다"고 소개한다. 와인에 대한 안목도 높이면서 애호가들만이 가지는 즐거움인 셈이다.
와인 메이커스 디너 진행
"로버트 몬다비 아시죠? 91세인 그는 지금도 전세계를 날아 다니며 나파밸리 와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건강을 지키는 5가지 비밀을 소개했는데 뭔지 아세요? 아침 저녁으로 수영을 하고, 점심 후 반드시 한시간 낮잠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와인 한잔을 마시고 마사지를 받습니다. 마지막 한가지는 만나는 여자들과 반드시 키스를 나눈다(?)는 것입니다." 좌중의 폭소가 이어진다.
지난 13일 저녁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 1층 그랑카페. 카페 내 한쪽은 '비노테크'로 불리는데 매달 한 번씩 와인 메이커스 디너가 열리는 공간이다. 이 날은 신동와인이 수입하는 로버트 몬다비 와인의 와인 메이커스 디너 자리. 오래간만에 한국을 찾은 로버트 몬다비사의 제프 쿡 아태 담당 이사를 비롯, 50여명이 참석했다.
로버트 몬다비는 미국산 나파밸리 와인을 세계적인 고급 와인 반열에 올려놓은, 살아있는 와인 신화의 주인공. 오늘날 와인 명산지로서 나파밸리가 누리는 영광이 그에게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까 리셉션에서 맛본 와인은 쇼비뇽 블랑 화이트 와인이에요. 지금 드시는 화이트 와인은 샤도네이 입니다." 쿡씨의 설명에 모두들 와인 잔을 입가에 대며 맛을 비교한다. 여러가지 다양한 와인이 코스별로 나오는 것이 와인 메이커스 디너의 특징. 이날 오리고기 코스에는 피노노이, 양갈비가 나온 메인 디시에는 카베르네 쇼비뇽 레드 와인 2가지, 디저트용으로는 멜로 와인 등 모두 6가지 와인이 제공됐다. "와인 맛이 조금씩 다르죠? 이 와인은 카베르네 쇼비뇽 78%, 멜로 7%, 카베르네 프랑크 2%가 블렌드된 것입니다." 쿡씨는 식사 중간마다 마이크 앞에 서서 와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농담을 섞어 가며 분위기를 돋구는 것도 그의 몫.
보통 와인 메이커스 디너는 스탠딩 리셉션으로 시작, 3시간 가까이 진행된다. 먼저 선채로 비스킷 등 간단한 요기거리를 먹으며 얼굴과 분위기를 익힌다. 이어 와인 메이커의 설명과 함께 코스요리를 즐기는 가운데 와인에 취하면서 무르익은 분위기를 즐긴다. 참가자들의 명함을 추첨, 경품 와인을 선물하는 것도 마무리 일정. 이 날 고급 와인을 탄 참가자 유양숙(EG외국어학원 부원장)씨는 "처음 디너에 나왔는데 앞으로 자주 와야겠어요"라고 웃음을 터뜨렸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
●와인 메이커스 디너 주최
와인21닷컴 www.wine21.com 와인포털 사이트
매주 토요일 와인바 샤또21(02-517-3338)에서 개최
와인나라 www.winenara.com
아영주산과 대유와인 등 행사 안내
비노비노 (02)3427-2341
금양인터내셔날 (02)2109-9220
신동와인 (02)794-4531
까브드뱅 (02)786-3136
나라식품 (02)405-4300
바쿠스 (02)481-4588
아간코리아 (02)3481-0355
꼬르뱅 (02)523-0166
고려양주 (02)588-0254
리커랜드 (032)544-3795
페르노리카 (02)559-5843
●5월 와인 메이커스 디너 일정
그랜드 힐튼 연회장 플라밍고 (02)2287-8250
21일 오후 7시, 8만원(세금, 봉사료 포함)
밀레니엄 서울힐튼 시즌스 (02)317-3060
25일 오후 7시, 10만원 (세금, 봉사료 포함)
쉐라톤 그랜드워커힐 델비노 (02)450-4747
28일 오후 7시, 8만원(세금, 봉사료 별도)
웨스틴조선호텔 베키아 앤 누보 (02)317-0022
6월4일 오후 7시, 5만∼12만원
인터컨티넨탈호텔 그랑카페 (02)559-7614
월 1∼2회 와인 메이커스 디너 개최
비나모르 (02)324-5152
■와인 메이커스 디너-가격은?
'와인 메이커스 디너'는 보통 애피타이저와 샐러드, 메인 디시, 디저트로 이어지는 코스요리와 함께 대여섯 가지 이상의 와인이 식탁에 오른다. 많이 나오면 와인 종류만 20여가지가 넘는다. 메뉴나 와인 고급화에 비중을 두는 호텔은 좀 더 비싼 편이지만 일반 와인바나 레스토랑에서 열리는 행사 참가비는 평균 2만5,000∼5만원. 음식의 종류와 수준, 와인 종류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한 끼 식사를 위해 몇 만원을 쓴다는 것은 적지 않은 비용. 그런데 어찌 보면 얘기가 다르다. "이만한 정찬을 다른데 가서 맛본다고 하면 얼마가 들겠습니까? 대여섯 가지 와인을 동시에 한 자리에서 맛 볼 수 있는 곳이 또 있나요?"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양현교 그랑카페 지배인은 "와인 메이커스 디너에 나오는 음식과 와인을 개별적으로 일일이 시킨다면 참가 비용의 두배, 세배는 거뜬히 넘을 것"이라고 말한다.
더구나 와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와인 맛을 비교·시음할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까지 얻는다고 생각하면 계산이 달라진다. 그래서 와인 메이커스 디너에는 부부나 연인 등 여러 커플들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한 자리에서 많은 것이 원스톱으로 해결된다는 이유에서다. 친구들과 만나거나 각종 모임을 와인 메이커스 디너에서 갖는 것도 최근 생겨난 풍속도다.
신동와인의 이종훈 대표는 "잘만 활용하면 와인메이커스 디너는 값싸게 정찬과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라고 소개한다.
/박원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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