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석인(石人)은 실내에 전시하지 않고, 실외에 세워두죠.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예요. 하지만 이름 없는 석공들이 만든 석인엔 무궁무진한 사람들의 표정들이 숨쉬고 있습니다. ”연극 연출가로 40여년간 한국 연극계를 지켜온 거목 김정옥(72) 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일평생 연극 무대 위에서 열정을 불태웠던 그가 인생의 황혼녘에서 또 다른 무대를 열었다. 경기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팔당호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경관의 언덕 위에 15일 개관한 ‘얼굴 박물관’이다.
얼굴 박물관은 김 관장이 40여년간 틈틈히 모아온 석인 400점을 비롯해 목각 인형, 유리 인형, 사람 얼굴을 본 딴 와당 등 1,0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모였지만, 공통된 주제는 바로 ‘얼굴 표정’이다.
내세를 응시하는 듯한 무표정한 얼굴의 문인석, 천진난만한 동자석, 해탈의 미소를 머금은 듯한 민간 석불, 두눈을 부릅뜬 마을의 장승 등. 값어치 없는 석물로 여겨졌고, 무게도 많이 나가 ‘아파트 무너진다’는 이웃 주민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지만, 김 관장에게 이들은 세상의 또 다른 배우들이다. “희로애락의 인간사 삼라만상이 이 얼굴들 속에 담겨 있는 거죠.”
박물관은 그가 연극 무대에서 추구했던 예술적 이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소르본 대학에서 영화 및 현대불문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김 관장은 극단 ‘자유’를 창립, ‘무엇이 될꼬 하니’ 등 수십 편의 연극 연출을 통해 서구 연극과 한국의 전통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그의 연출실력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동양인으로선 처음 국제극예술협회(ITI) 세계본부회장에 올라 지난해까지 세차례 연임했다.
박물관 개원을 축하하러 찾아온 제자 최치림 중앙대 예술대학원장은 “시에서 출발해 불문학, 연극, 영화로 지평을 확대해간 선생님의 관심은 결국 사람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드라마”라며 “박물관에서도 선생님의 그런 관심이 여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박물관은 그저 옛 사람들의 물건을 모아둔 장소가 아니다. 김 관장은 “옛 유물을 모아둔 박제화된 장소가 아니라 과거와 현대, 어제의 얼굴과 오늘의 얼굴이 서로 만나 생동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150평 규모의 실내 전시공간이 객석과 분장실 등을 갖춘 연극 무대 형태로 설계된 것도 그 때문이다. 유물 전시 뿐만 아니라 연극 공연이나, 영화 상영 등 다양한 예술 실험의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여기 전시된 석인들도 일종의 무대 위 배우인 셈이죠.”.
야외에 마련된 고풍스런 한옥은 차를 마시며 음미하는 공간. 한옥체험을 원하는 사람들은 아예 이곳에서 하룻밤을 잘 수도 있다. “이곳은 사람이 그리운 사람,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사람, 자유롭고 인간적이기를 원하는 사람, 그런 이들을 위한 곳입니다. 박물관 입구에 ‘사람이 싫으면, 이 문으로 들어오지 마세요’라는 팻말을 붙일 겁니다.”
<이용팁>이용팁>
■ 중부고속도로 광주 IC에서 빠져 나오자 마자 우회전. 팔당댐으로 향하는 45번 국도를 탄 후 도마리 삼거리에서 우회전, 퇴촌으로 향한다. 퇴촌사거리에서 좌회전, 분원백자관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오면 된다.
■ 월, 화요일은 휴관하며,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연다. 관람료는 3,000원이며, 차를 마시면 6,000원이다. (031)765-3522
/광주=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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