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 않으세요? 벌써 며칠째인가…" 부처님 오신날(26일)을 1주일 앞둔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포이동 능인선원의 야외 천막에서는 불자 20여명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바쁜 손을 놀리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한지를 풀칠해 한 장 한 장 붙이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붓으로 채색작업을 하고 있었다. 가끔 나지막한 웃음이 오가지만 일을 하는 순간 만큼은 모두들 진지한 표정이다.
이들은 부처님 오신날에 선보일 전통등을 만들고 있는 중. 단순히 불을 밝히는 조명이 아니라, 전통등으로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다. 가로 4m, 세로 7m의 판 위에 각각 룸비니동산, 극락도, 삼신불, 십장생도를 형상화하는 것이다.
작업을 지휘하는 이유훈(李由薰·46) 능인선원봉축예술본부장은 "부처님이면 부처님, 용이면 용처럼 지금까지 선보인 전통등은 대부분 단일 작품이었다"며 "우리가 준비하는 작품은 부처님과 동물, 사람과 꽃, 물 등의 전통등을 한꺼번에 등장시켜 룸비니동산 같은 특정 세계, 특정 주제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사람 대신 전통등이 '출연'하는 연극과 같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각 작품마다 적게는 30여개, 많게는 150여개의 전통등을 설치한다.
이 중 룸비니동산은 용 아홉 마리가 룸비니에서 막 태어난 석가모니의 몸을 씻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극락도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과 하늘나라의 새, 극락화, 연꽃을 설치해 극락의 모습을 표현한다. 삼신불에서는 청정비로자나불, 보신이신노사나불, 석가모니불 등 삼신(三神)에게 극락세계의 천인(天人)들이 꽃 공양을 드리며 십장생도는 사슴 등 십장생이 등장해 사바세계 중생의 안락함을 기원한다.
이번 작업은 지난해 7월 시작했다. 이유훈 본부장은 "지난해 부처님 오신날 화엄신장님 등의 전통등을 만들었는데 조금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특색있고 아름다운 전통등을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경전을 다시 읽고 자료를 구했으며, 스님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아름다운 고려 불화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불교에 나오는 상상의 세계를 전통등으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대학 연극활동을 통해 무대, 음향, 조명, 효과 등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어서 일을 지휘하게 됐지만 그냥 주부로 살아 온데다 이같은 작업을 해본 적이 없어 어려움이 많았다.
전기작업과 전통등의 뼈대로 사용할 철골작업 그리고 전통등을 움직이기 위한 기계장치 설치 등은 이미 끝냈다. 채색 작업이 약간 남아있는데 23일 동대문―조계사 제등행렬에서 선보이려면 밤샘작업을 해야 할 판이다.
이 작업에는 능인선원 불자 50여명이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자원봉사 차원에서 함께 하고 있다. 일부는 회사 일을 마치고 달려와 돕기도 한다.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는 주부 황희숙(44)씨는 "우리가 만드는 전통등을 보고 사람들이 부처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생각에 몸이 고된 줄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오늘 전통등 전시회 개막
부처님 오신날을 기념해 전통등전시회와 연등놀이가 펼쳐진다.
21일 낮 12시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서 제7회 전통등전시회가 개막된다. 26일까지 계속되는 전시회에서는 전통등연구회(대표 전영일)가 제작한 제석천등, 인왕등, 용등, 호랑이등, 종등, 법고등, 수박등 등이 선보인다. 시민들이 직접 등을 만들 수 있는 부스도 설치된다.
22일 오후7시에는 여러 등과 연희단이 행진하며 조계사 앞 우정국로와 인사동을 달구는 연등놀이가 열린다. 23일 오후7시에는 동대문운동장을 출발, 조계사에 이르는 제등행렬이 펼쳐진다. 용등, 탑등, 봉황등 등 10만여개의 등이 흥겨운 가락에 맞춰 거리를 행진한다. 행진이 끝난 뒤에는 참가자들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대동 한마당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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