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중인 지상파 외주전문 문화채널 설립이 지상파 3사가 장악한 방송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를 적극 지지해온 독립제작사들도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문화관광부는 지난해와 올해 청와대 업무보고 등을 통해 지상파 3사의 독과점 해소, 프로그램의 다양성 확보, 방송영상산업 활성화를 위한 대안으로 외주전문 채널 설립을 추진해왔고, 방송영상산업진흥원에 의뢰해 지난달 말 구체적인 설립·운영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아 본격적인 논쟁에 불을 지폈다.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20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외주전문채널 도입에 관한 쟁점과 토론' 세미나에서 임정수 서울여대 언론영상학과 교수는 '외주채널 설립 목적과 효과에 관한 검토'라는 주제발표에서 문화부가 내세운 외주채널 설립 목적의 타당성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경쟁을 유도한다면서 공영체제를 들먹이는 것은 가당치 않고, 외주채널을 지상파로 할 경우 이를 포함한 4개 지상파 네트워크의 점유율이 오히려 증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 채널설립이 시청자의 선택 폭을 넓힌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프로그램의 다양성은 편성의 문제이지, 새로운 공영채널의 추가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국내 독립제작사의 약 48%가 최근 3년간 방송사 납품실적이 전혀 없고, 영국에서도 외주전문 채널4 설립 이후 독립제작사가 늘기는 했지만, 실질적 혜택은 몇몇 제작사에 국한됐다"면서 외주채널이 산업활성화에 기여한다는 문화관광부측 주장을 반박했다. 임 교수는 외주채널 설립이 오히려 지상파 채널들이 유지하고 있는 편성과 제작 시스템을 고착화하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주채널 설립이 지상파 방송에 대한 외주편성쿼터제 중단으로 이어지고, 외주채널에 대한 독립제작사들의 종속을 심화시켜 결국 프로그램 수급시장의 폐단으로 지적돼온 불공정 거래관행이 답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경쟁 도입은 필요하지만 '선(先) 지상파방송 구조개혁, 후(後) 채널 신설'이 되어야 하며, 신설되는 채널도 공영이 아닌 민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동규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상파 신규채널 도입과 프로그램 시장'이란 주제발표에서 신규채널 도입 방안의 장단점을 두루 분석한 뒤 "현재 외주채널을 둘러싼 논쟁이 필요성, 현실성보다는 추진 주체와 절차의 문제에 치중돼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방송시장의 현실과 시장예측, 뉴미디어 환경, 사업자간 이해관계 등을 고려한 다양한 시뮬레이션 작업과 이를 토대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론에 참가한 양문석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도 "문광부가 지난 14년 동안 독립제작사 활성화 방안 26가지를 내놓았지만, 외주 제작 프로그램 비율 증가 말고는 모두 실패했다. 외주채널 설립은 이를 무마하기 위한 탈출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강택 PD연합회 회장도 "가능성도 없고 실효성도 없어 보이는데 여기(외주채널)에 왜 집착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와는 반대로 황근 선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외주정책의 실패를 인정하지만, 지상파 독과점으로 인해 프로그램 질이 저하되고 다양성이 높아지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외주 채널을 설립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 참석자들은 지상파 3사 중심의 현행 방송체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했으나, 외주채널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렸다. 문화관광부는 내년 출범을 목표로 올 하반기 안에 외주채널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방침이지만, 지상파와 케이블·위성 등 방송현업에서는 물론 학계에서도 '잘못된 처방'이라는 목소리가 높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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